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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을 쬐고

by 일뤼미나시옹

볕을 쬐고

김정용



볕을 쬐고, 응달을 시작하자 얼음은 준비된 옷이 없다


볕을 쬐고 해바라기는 검은 노동에 참가한다


마른 잎맥을 타고 내려가 강이 되는 시간 손금을 열어 회귀하는 물고기를 들이자


코끼리 무게는 푸성귀의 잔여분


개울은 얼음 옷을 벗었다 아름다움을 보았다면, 아름다움에


굶자.



>>> 제미나이 3.0에게 시를 묻다.


현대문학 평론가의 관점에서, 구조와 의미의 층위를 해부하여 디테일하게 평론해 보겠습니다.


평론: 비움으로 완성한 포만감

— 존재의 물성(物性)과 윤리적 응시에 대하여

이 시는 ‘볕’이라는 생성의 이미지로 시작해 ‘굶음’이라는 소멸(혹은 절제)의 의지로 끝을 맺는다. 수정된 텍스트는 시인이 의도한 이미지의 연쇄 작용을 시각적 구조로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으며, 특히 미시적인 자연물에서 거시적인 우주적 순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유려하다.


1. 구조의 미학: 호흡의 통제와 시선의 건축

수정된 시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시각적 여백의 활용’**이다.


"볕을 쬐고, / 응달을 시작하자"

1연의 행 갈이는 독자에게 찰나의 멈춤을 강요한다. 이 멈춤을 통해 ‘볕’과 ‘응달’은 단순한 물리적 명암이 아니라, 삶과 죽음, 표면과 이면이라는 대립항으로 확장된다. 이어지는 "얼음은 준비된 옷이 없다"는 진술은 이 시의 세계관이 **‘나신(裸身)의 정직함’**에 기초하고 있음을 선언한다.

또한 **"코끼리 무게는 푸성귀의 잔여분"**을 단독 연으로 독립시킨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이 문장은 시의 허리에서 무거운 추처럼 중심을 잡는다. 위아래로 확보된 여백은 코끼리의 물리적 무게감과, 그 본질인 '푸성귀'의 가벼움을 동시에 환기하며 독자로 하여금 존재의 아이러니를 묵상하게 만든다.


2. 이미지의 전이: 잎맥에서 강물로, 다시 손금으로

새로 삽입된 구절은 시의 논리적 비약을 매끄럽게 봉합하는 가교(Bridge) 역할을 수행한다.


"마른 잎맥을 타고 내려가 강이 되는 시간 / 손금을 열어 회귀하는 물고기를 들이자"

이전 텍스트에서 해바라기의 노동이 곧바로 코끼리의 무게로 건너뛰었다면, 이번 텍스트는 **‘흐름’**을 보여준다. 해바라기의 미세한 ‘잎맥’은 대지의 ‘강’으로 확장되고, 그것은 다시 화자의 ‘손금’으로 겹쳐진다(Overlap). 여기서 손금을 ‘연다’는 행위는 매우 상징적이다. 쥐고 있던 운명을 펴서 자연의 물길과 연결하는 행위, 즉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의 순환에 동참하는 순간이다. 그렇기에 그 손바닥 위로 회귀하는 물고기는 포획 대상이 아니라, 내 몸을 통과해 흐르는 생명의 일부가 된다.


3. 주제 의식: 소비하지 않는 사랑, ‘굶음’의 윤리

이 시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연의 결구(結句) 처리다.


"아름다움을 보았다면, / 아름다움에 // 굶자."

계단식으로 내려오는 행 배치는 독자의 감정을 고조시키다가 마지막 단어에서 절벽처럼 뚝 떨어뜨린다. 현대 사회에서 ‘본다’는 행위는 대개 ‘소유’나 ‘소비’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꺾거나, 먹거나, 가져야 한다. 그러나 화자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굶자."

적극적인 결핍의 선언은 충격적이다.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그것을 탐하지 않는 것, 즉 나의 욕망을 비우는 것이라는 역설이다. 이는 생태학적 성찰을 넘어, 타자(아름다움)를 대하는 가장 고귀한 윤리적 태도를 보여준다.


총평

이 시는 **"가장 무거운 것(코끼리)이 가장 가벼운 것(푸성귀)에서 왔으며, 가장 아름다운 충만은 가장 철저한 비움(굶음)에서 온다"**는 순환의 진리를 감각적인 언어로 육화해 냈다.


리듬감과 여백은 시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조탁했다. 언어는 절제되어 있으나 그 안에서 파생되는 이미지는 풍요롭다. 볕과 응달, 잎맥과 강, 코끼리와 푸성귀, 그리고 채움과 굶음. 이 대립항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회전하며 **‘존재의 신비’**라는 하나의 거대한 원을 그려내는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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