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바램이 있다면 평생 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이었다. 나의 취미 생활은 한마디로 ‘용두사미’였다. 뭐든 팔을 걷어붙이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제대로 끝을 본 게 없었다. 클라이밍, 가죽공예, 드럼.. 호기심은 왕성해서 예체능을 고루 섭렵하며 다양한 세계에 손을 뻗었지만 그 중 꾸준하게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은 없었다. 20대 시절엔 노래 가사 따라 ‘취미는 사랑’ 이라며 연애에 열을 올렸지만 30대가 되니 그 또한 시들해저서 시답잖은 농담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던 차에 여행을 통해 평생 하고 싶은 취미가 생겼다. 바로 ‘스쿠버 다이빙’이다.
어릴 적 인어공주를 좋아했다. 인어공주는 발을 갖길 원했지만 난 인어공주의 꼬리가 부러웠다. 나도 꼬리를 활개치며 바다를 누비고 싶었다. 바다 생물도 좋아했다. 강아지나 고양이같은 소동물 보다는 돌고래나 고래, 펭귄을 좋아했다. 돈이 무지막지하게 많다면 돌고래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돌고래는 바다에 있을 때 더 행복할거고 내가 바다로 가면 될 일이다.
나와 다이빙의 인연은 26살때 가족여행을 갔을 때가 시작되었다. 취업 성공의 기쁨을 가족들과 나누고 싶었고 오 랫동안 하고싶었던 것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첫 가족여행을 바다가 아름다운 필리핀 세부로 떠났고 스쿠버다이빙 체험도 신청했다.
우리가족은 나란히 공기통을 매고 필리핀의 바다로 들어갔다. 물론 모두 자격증이 없이 하는 체험 다이빙이라 옆에 강사 선생님들이 붙어서 우리를 케어해 주었고 그렇게 깊은 수심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날 흥분 시키기엔 충분 했다. 인어공주도 아닌데 바다에서 숨을 쉴 수 있다니, 눈 앞으로 살아있는 물고기가 지나가다니! 이후로 호시탐탐 바다속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기를 원했다. 바다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에 오일은 서울에 묶여 있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니 이번 여행의 장기의 자유시간을 놓칠 수 없었다. 사실 자격증을 따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건 얼마나 자주 바다를 나갈 수 있는가가 아닐까. 나는 자격증을 따고는 매일을 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나갔다. 매일 들어가도 매일 새로웠다. 다른 물고기가 지나갔고 시간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지루를 느낄 틈이 없었다. 다이빙이 왜 좋은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일단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서 감동을 크게 느끼는 편이다. 특히 인상주의파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바다에 들어가면 한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인생보다 더 한 영화는 없다고 자연보다 더 한 그림도 없을 것이다. 달콤한 분홍색의 산호초들, 진한 무늬의 가오리, 떼로 몰려오는 잭피쉬의 무리도 아주 작은 파란색의 물고기도 한눈안에 온갖 다양한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4D 서라운드로 말이다.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생동의 아름다움은 자연에서만 온다. 게다가 자연은 계속 자라고 변화하고 어떤 모습이든 편안하게 아름답다. 그대로 자연 스럽다. 어떤 바다의 모습이든 아름다움으로 인한 감동을 언제든지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지구의 80%는 바다라는 것을 아는가? 아무리 모든 육지를 탐험해도 지구의 20% 밖에 탐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다를 탐험해야 조금 더 많은 지구를 다양한 지구를 만날 수 있다. 이건 좀 다이버들 사이에서 다이빙 하자고 꼬실 때 많이 하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멘트만큼 모험심을 자극하는 사실도 없지 않나 싶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공기통에 의지해 숨을 쉬다 보니 숨쉬는 것 자체에 집중을 하게 되었고 그 행위가 묘하게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인간은 숨을 쉬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면서도 평소에 생활 할 때는 숨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쉴 수 있는 숨이 산소통 하나가 전부인 바다속에서는 한 숨 한 숨이 소중하다. 산소를 깊게 빨고 내쉰다. 들이 쉬고 내쉬는 모든 숨을 인지 한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항상 살아 있었는데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참으로 단순하고 본능적인 순간이다. 이 순간이 참 좋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살아잇다는 것을 아는 기분.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나는 아, 나는 이걸 평생 하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나에게도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취미라는게 생겼구나. 평소에 이걸 하는 것을 기다리면서 힘듦을 참을 수 있는 일이 생겼구나. 사랑하는 일이 생겼구나. 그렇게 나는 이제 누가 취미를 물어봐 주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