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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vinstyle
Apr 09. 2024
골프연습장 취업 3분 스피치
회사문화 답사기 21
생애 첫 비자발적 권고사직 이후 버틸 시간은 삼 개월이었다. 위로금만큼의 시간 동안 모친께 생활비를 송금하고 홀로 사는 역삼동 원룸에서 재취업을 위한 모색기에 들어섰다.
첫 실업상태는 겪어본 적이 없었던 탓에 18년 만에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보다는 일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막연한 불안감이 하루에 하루를 더하면서 조금씩 무거워졌다.
모친에게는 실업상태임을 알리지 않았다. 어느 자식이든 부모에게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이기에 마음의 부담감은 나 혼자로 족했다.
삼보컴퓨터 사직 이후에도 나를 챙겨주시던 형님께서 가끔 골프초대를 해주셨고, 첫 직장 선배님도 '다 잘될 거야' 하시며 응원해 주셨다.
웃으며 '네'라고 답은 하였지만 직장 운이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루틴을 만들기 위해 실내 골프연습장에 등록을 했다. 남는 게 시간이니 쉬는 기간에 운동 겸 골프연습에 매진하기로 했다. 적어도 연습하면서 공을 치는 시간만큼은 잡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한 달이 금세 지나갔다.
여기저기 뿌려놓은 이력서에 헤드헌터 여러 분을 만났다. 외국계 컴퓨터 회사나 국내 유통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었다. 그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나이가 좀~~~
영어가 좀~~~
최근 1년간 업종이 좀~~~
헤드헌터 시장의 노른자위인 3040초가 아니고 유창한 영어 네이티브가 아니고 최근 회사가 별 볼일 없다는 거였다. (나의 해석)
밝은 햇살을 비추는 아침은 꾸역꾸역 매일 찾아들고 하루가 길기도 짧기도 하면서 꼬박꼬박 짙은 밤은 찾아왔다.
4월 1일 자로 실업상태가 되었기에 화창한 벚꽃과 따뜻한 봄기운에 약간의 무기력을 느끼며 이겨내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 두툼해져 갔다. 이후 4월은 비자발적 구조조정의 징크스가 되었고 지금도 해마다 4월이 오면 살짝 트라우마가 올라온다.
두 달이 지나가면서 확정된 직장이 없다는 것이 불안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성경 요나서에 나온 '물고기 뱃속에 삼 키운 요나'의 심정처럼 나갈 곳이 없고 사방은 어두웠다. 묵상 기도를 하면서 이 어둠의 뱃속에서 나갈 날이 있을 것이라 자신을 다독이며 잠들곤 했다.
여느 날처럼 오전에 실내 골프연습장에서 연습 삼매경에 들어갔다. 가끔씩 마주치며 인사하던 젊은 남자손님과 골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드라이브 슬라이스 잡는 법, 퍼팅 잘하는 법, 비거리 내는 법 등 온갖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며 서로만의 노하우로 가볍게 정보를 주고받았다.
남자들의 골프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만큼이나 밤새는 줄 모르고 무용담과 노하우를 대방출하며 자연스럽게 친분이 쌓이는 '남자들의 수다'꺼리이기에 그 분과 조금 친숙해졌다.
며칠 뒤, 다시 그 분과 골프연습을 하게 되었다. 잠시 쉬는 동안 서로 통성명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 자연스럽게 질문이 오갔다.
물론, 나는 생애 첫 백수라이프를 살고 있다 했다. 그분은 벤처기업 CEO였다. 인터넷 카드로 유명한 작은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동영상 서비스'사업화를 기획 중이라고 했다.
대기업에서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한 내 경력에 관심을 보이며 이 사업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진지하게 물어 오셨다.
2004년 봄이었다.
당시는 개인SNS도 성숙기에 접어들기 전이었고 네이버 블로그, 싸이월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 CEO께서는
개인이 동영상을 촬영해서 인터넷상에서 '나만의 TV'를 만들고 채널을 운영하면서 무료로 동영상을 올리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을 구상 중이었다.
몇 가지 아이디어와 전략이 생각나서 실내 골프연습장의 낡은 소파에 앉아서 의견을 제시하였다.
☞ 핵심은 killer contents
☞ star marketing 하는 방법
☞ 서비스 홍보와 PR 방안
☞ 세일즈 전략과 실천방안
☞ contrnts 생산자와 갤러리 모으기
삼 분남짓 의견을 피력했고 그 CEO는 혹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의논해 볼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취업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 L사로 가서 그분을 다시 만났다.
사업계획 브리핑 후 함께 일하기로 서로가 결정했다. 재취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한국판 유튜브 Pandora TV'의 창업 멤버가 된 순간이었다. 벤처 성공스토리에 도전한다는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스타 마케팅을 위해 당시 유명한 배우들에게 무한대의 동영상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의 일상을 대중들에게 리얼타임으로 보여주는 Live 동영상과 VOD 동영상 서비스 기획안을 만들었다. '장동건 TV, 김하늘 TV' 등의 콘셉트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을 찾아다녔다. 스타크래프트 TV 기획안을 만들고 프로게임구단도 찾아다녔다.
지금의 V logue 나 shortform의 원형을 제시했던 것인데 유튜브가 한국에서 자리 잡기 전이어서 스타 마케팅은 불발이었다. 너무 빨랐던 것이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좋았다. 개인 TV 채널이 하루에도 몇백 개씩 생겨났고 순 방문자수도 증가하면서 contents upload와 view log in 트래픽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문제는 투자비용이었다. 용량이 큰 contents들을 담아 돌려야 하는 server storage 비용이 점점 높아졌고 개인채널 중 인기 contents에 광고를 붙여 수익구조를 만들어서 순환을 시켜야 했으나 광고주 영입도 부진하고, 네티즌 반발도 있었다.
자금회전을 위해 CEO와 부사장은 대출을 일으키며 그다음 해 봄까지 파이팅 하며 버텼다.
{회사에서 밀려난 후 해야 할 일}
☞ 자본 : 일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계산
☞ 일 :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구분
☞ 사람 : 지인과 친구 확실하게 정의하기
☞ 관찰 : 세상물정, 돈 되는 사업, 망하는 사업
☞ 성찰 : 나의 부족한 역량, 마인드, 성품
☞ 인내 : 분노, 불안 잠재우기. 조급하지 않기
☞ 용기 : 긍정과 낙천 키우기, 도전하기
☞ 기회 : 필연은 우연을 가장하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