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ffyeon Sep 08. 2022

9월 8일

추석 연휴 전 날 일찍 일을 마치고 혼자 카페에 가서 이주란 신간 소설을 드디어 다 읽었다. 서로를 끝까지 그리워하며 끝이 나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리고 나는 이주란 소설 속 동네가 자주 그립다. 서로의 슬픔을 가끔씩은 못 본 척하기도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면서.

어린 아이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누나는 왜 울고 있어요,라고 말을 거는 상상을 한다.



계속 걸었다. 걷기에는 조금 더웠다. 아직은 가을이 마저 오지 않았고 땀에 절여진 나는 며칠 전에 친구랑 같이 갔던 술집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마지막 여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걸었다.



합정을 지나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망원우동집을 지나고 내가 좋아하는 이모가 있는 너랑나랑호프를 지나고 연휴 전이라 사람들이 많은 망원시장을 지났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친구와 함께 앉았던 바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이 바로 알아보셨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술을 시켰고 단골손님 둘이 왔고 나는 혼자서 서한나 작가의 사랑의 은어를 읽으면서 킥킥 댔다. 이 사람 글은 너스레 떠는 느낌이 좋다. 농담처럼 사랑 고백하는 것 같아서 좋아. 기억력이 좋은 작가의 재능이 부럽다. 나는 기억력이 매우 좋지 않은데, 이건 나만의 자기 방어의 일종이었다. 나는 잊어야 잘 살 수 있었다. 모든 걸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쯤 이렇게 살고 있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썼다. 좋았던 순간들은 기억해내고 싶어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잊어버릴까 봐. 그것만큼은 기억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써 내려간 연서는 적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혼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커플이 천천히 지나갔다.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장 멋지고 예쁜 옷을 입은 것 같은 두 사람은 쭈그려 앉아있는 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 갑자기 멈추고 서로를 오래 바라보았다. 나는 다시 담배를 입에 머금고 그 둘을 바라본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그런 나를 두고 그 둘은 지나간다.



기억력이 좋은 내 친구에게 너는 정말 좋은 재능을 가졌어! 너는 사랑을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졌는데 괜히 낯간지러워 그만뒀다. 나중에 만나서 술을 마시면 말해야지 싶어서 야 있잖아 방금 내가 한 커플을 봤는데… 하면서 내가 보고 느낀 걸 말해줬다.


그래서 너를 못 본 척 그냥 지나간 게 포인트지?

그치, 그거야



나는 거친 손을 좋아하는데, 그거는 할아버지 손이 조금은 까슬거렸다는 게 내 오랜 기억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 손이 마지막에는 아주 슬플 정도로 차가운 감각이었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다. 몇몇 슬픈 장면은 버릴 수가 없다. 나는 그를 정말로 사랑하니까 그것은 슬프더라도 잊어버릴 수가 없으니까.



하나둘씩 바 자리에 앉았다 가버렸다. 다시 누군가가 새로 오고 나는 혼자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가을이 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8월 21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