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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Sep 19. 2022

9월 19일

 진은영 시인의 신간 시집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다가, 시인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다. 나는 슬플 때마다 발바닥부터 저려오는데 이 인터뷰를 읽고 두 발이 저려와서 어쩔 줄 몰라했다.


"결혼과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맹세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즈음에 썼습니다. 사랑은, 완벽한 사랑은 없고 사랑의 태도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존재에 대한 성실한 태도가 사랑인 것 같아요.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하게 그 사랑이 전달되는 경우는 관계에서 쉽지 않은 것 같거든요. 우리는 항상 사랑할 때 정확하게 사랑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험들이 가득한데 그러한 때 그 사람 곁에 있고, 끊임없이 실패하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불신이 우리를 뒤흔들고 나는 어김없이 당신을 오해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당신 옆에서 끝까지 함께 있고자 다짐한다. 그런 결심 같은 마음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의 다짐은 나의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졌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낯선 동네에 가고 있었다. 어쩌다 알게 된 동생을 만나러 더운 여름날 노래를 들으며 계속 걷고 걸었다. 아직도 우리는 헤어지는 중이었다. 이제 막 찾아온 여름은 떠나갈 줄 모르고 슬픔과 서러움에 뒤엉켜 있는 와중에도 계속 사라지고 있는 중인 너를, 나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vaundy- 주마등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죽음의 순간, 스쳐 지나가는 일생의 주마등이 죽음의 대상뿐만 아니라, 죽음을 지켜본 이에게도 찾아온다'라는 가사에 대한 누군가의 해석을 본 후로 노래가 더 좋아졌다. 네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너는 죽을 거라며 나를 떠났다. 죽고 싶어서 죽어야 해서 더는 나를 사랑할 수도, 내 사랑을 받아주기도 힘들다며 떠난 너를 생각했다. 만약 네가 정말 죽을 거라면, 죽기 직전까지 네 옆에 있는 건 나였으면 좋겠다고. 모든 생을 걸쳐서 이해할 수 없더라도, 끝까지 곁에 있고 싶다고. 누구보다도 내 주마등이 더 길었으면 싶었다. 나는 사랑에 대한 기억력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서, 너를 가장 생생히 기억해낼 사람은 누구보다 나일 거라고 자만하면서.

너의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들을 끄적거리며 걸었다.



그런 다짐 같은 것이 사랑이니 무엇이니를 다 떠나서 네가 아직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내 결심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있기만 해 주기를, 나는 늘 사랑에 실패해왔고 네가 살아만 있다면 이런 결심 같은 거는 몇천 번이고 할 수 있다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자신도 없으면서 나는 그런 결심을 자주 했다.

사랑을 받고 싶었구나 깨달았다.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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