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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Jun 19. 2023

6월 19일



악몽을 꿨다. 


최근에 꿨던 꿈 중에서 가장 심한 악몽이었다. 꿈에서 나온 모든 사람들은 나를 믿지 않았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모든 말을 뱉었다. 변명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현실에서도 미워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를 미워하기로 굳게 결심했는지 그 어떤 말도 믿지 않았고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계속 말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내 말은 허공에서 흩어지기를 반복했고, 그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래 시발. 나 못됐어. 못됐고 천박해. 아무나 미워하고 싶어. 근데, 근데 난 너희를 미워한 적은 없었는데, 그런 적이 없는데. 지친 나는 결국 울 수밖에 없었다. 우는 것 말고는 소용이 없다는 듯이. 꿈에서 그렇게 울고, 또 울고, 계속 울다가 잠에서 깼는데 누워있던 나는 숨이 가빠져 있었고 그 상태로 엉엉 울었다. 목 놓아 울었다. 누군가 들어야 하는 소리인 것처럼.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계속 울었고 방이 너무 밝아서 무서웠고 아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른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어떤 슬픔과 공포를 꿈에 두고 오고 싶은 걸까. 

그래서 자꾸만 꾸는 걸까.

살고 싶어서. 




주방마감 하는 시간에는 늘 나영이에게 전화를 건다. 평소랑 똑같이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혼식을 갔다 온 나영이랑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너는 내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하게. 

-너는 사람을 좋아하잖아. 언젠가는 할 것 같아.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할까? 사람을 좋아해서, 너무 좋아해서, 견디기 힘들 만큼 좋아해서, 그런 꿈을 꾸는 건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거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도 되는지 그 이유를 찾아 헤매는 시집을 읽었는데, 나는 그 시인이 한없이 사람이어서 좋았고 그런 유약함이 좋았고 더는 사람이고 싶지 않은데 사람이라서 슬퍼하는 게 좋았다. 그런 고통을 아는 사람의 슬픔, 그런 게 좋았다. 

나는 여전히 못된 꿈을 꾼다. 요즘 나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됐을까 생각한다. 내가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더라면,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술에 기대지 않았더라면, 전화를 걸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하지만 …



악몽에 깨고 눈을 떴을 때, 창문 너머로 네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네 목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들렸다. 그래서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랬던 것 같다.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는 몰라. 내가 꿈에 두고 온 네가 그곳이 답답해서 잠시 나온 걸지도 몰라. 너를 두고 오기 위해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봐야 했다. 나를 미워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난 그런 사람들 마저 사랑할 수 있을까. 나영아, 나는 그럴 수 있어?라고 물으면 응, 그럴 수 있을 걸 아마도. 너는 사람을 좋아하잖아,라고 웃으며 말할 것만 같다. 



오늘은 꿈을 꿨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대신에 세 시간도 못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니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다시 잠에 들지 못했고 멍하니 누워서 천장을 봤다. 불면이 시작된 걸 보니 여름이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름이 올 때마다 제대로 자지 못했다. 여름마다 찾아오는 슬픔. 난 그것에 늘 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사방은 너무나 환해. 너무나 밝아서 견딜 수 없어. 


끈적한 손이 잡을 곳 하나 없이 흔들리다가 떨궈지는 소리. 그 소리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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