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희 Feb 08. 2022

빨간 알약 줄까, 파란 알약 줄까

매트릭스, 그 딜레마에 관하여


 이십 대 때, '매트릭스' 영화를 처음 접하며 '네오'의 선택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당연히, 빨간 약이지! 매일같이 쫓겨다니고 쓰레기 죽을 먹으며 누더기를 걸치고 살아야 해도, 자유의지를 갖고 '진짜' 삶을 살아야지. 그게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거지, 하고 역설하곤 했다만,


 이십여 년이 흐르고 매트릭스 4편을 보는 중년의 나는, 그냥 파란 약을 받아먹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충 평온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남몰래 생각해본다. 무엇이, 나라는 인간을 이토록 비겁하고 안일한 인간으로 만든 것일까, 오래 고민하고 성찰하며 내린 결론은, 결국 내 자신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 부조리니, 경제 시스템의 모순이니, 탓할 거리를 찾아봐도, 결국엔 내 정신이 이십여 년 전 그때보다 치열하지 못하다는 것, 무사태평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버린, 늙은 고목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늘, 깨어있어야 한다. 빨간 약을 받아먹고 숨을 헐떡이다 곧 죽는 한이 있더라도, 더 진실에 가깝게, 더 정의에 가깝게, 더 사랑에 가깝게 있다 갈 수 있도록, 아무것도 탓하지 말고 내 정신을 더욱 혹독하게 채찍질해야만 한다.


 그래야 마지막 순간에 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았노라, 안심하며 떠날 수 있을 테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