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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작 Jun 02. 2023

나이에 관한 ‘비움’ 이야기

비워내는 법엔 세월에 쌓인 지혜가 필요하다.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사전에서의 불혹의 정의는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적혀 있다.


언젠가 내 질문에 돌아왔던 엄마의 대답 또한 사전의 대답과 비슷했던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힘든 순간이 언제였나?"라고 물었을 때 말이다.


엄마는 마흔이라고 했다. 사람의 나이가 마흔으로 접어들면 사회적 위치에서 훨훨 날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상 일이 가장 힘들 때라 했다.


이런, 지금도 세상 일이 힘든 것 같은데… 더 힘들어진단 말이야?


그런 마흔을 훌쩍 지난 내 부모님은 지금, 하늘의 명(命)까지도 깨닫게 된다는 나이인 '지천명知天命'의 시기를 살고 계신다.



작년 여름, 더위가 한풀 꺾여갈 즈음 1년을 기다렸던 아빠의 새 차가 나온 날이었다.


15년을 탄 내연기관 차를 배신(?)하고 대세에 따라 전기차를 인수하게 된 아빠. 차에 이름까지 미리 지어놓고 오래 타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무사고 고사'를 저녁에 모여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차를 끌고 집에 다다른 아빠. 아파트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하려나 하던 순간, 당신 스스로 기둥을 박는 사태를 만들고야 말았다. 엄마는 아빠가 너무 안 오니 익숙지 않은 전기차 충전법을 익히고 오나 보다 했단다.


혼자서 오랜 고민 후, 처참한 상황이 담긴 사진 한 장만을 가족 채팅방에 보내온 아빠. 아빠는 한순간의 실수로 이어진 금전적 피해 및 적잖이 받은 충격의 현실을 며칠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고 당일의 충격에서부터 견적을 받고 결제를 하기까지 아빠의 후회는 단계적으로 증가해 갔다. 아마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회사에서 처음 이 소식을 접한 날,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니, 아빠가 초보도 아니고~ 출고 첫날에... 이런 일이! 엄한 데 돈 나가게 생겼네요...” 솔직히 엄마라고 짜증이 안 났겠나. 예전에 엄마 말로는 아빠가 초보부터 차를 박은 게 수십 번이라고 했으니. 그렇지만 그날은 어쩐지 화내지 않던 엄마. 누구보다 상심이 컸을 아빠에게 엄마는 메시지를 보냈나 보다.


나이를 먹게 되면서 어쩔 수 없었던 일들은
정말 다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넘겨 버리자고.
어쩔 수 없었던 일들이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렇게 받는 스트레스는 신체에 매우 유해하다고.
여기에 항상 건강이 최고라는 바람을 덧붙였다.



나는 며칠 후 의도치 않게 그 메시지를 읽게 되었다. 종종 채팅방을 열어 놓고 볼 일을 보러 가는 아빠가 그날도 채팅방을 나에게 오픈하고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이번 일로 아빠한테 잔소리 한마디 안 해요?”

- "화를 덜 내려고 하는 거지"


엄마도 엄마의 젊은 날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화를 붙들고 쉽게 놓아주지 못했던 날들이 간혹 있었더랬다. 그런 날들이 쌓여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니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이 먹어 보니까 몸과 마음을 자극하는 나쁜 화들은 제 의지대로 떨쳐내는 편이 좋다는 것을 습득하셨다고. 혹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화를 낼 힘이 없어져 가는 것 같다고도 하셨다.


순간 나는 속상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셨다는 사실이 너무 와닿았기 때문이다. 신체가 늙으면 화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 소모도 버거운 걸까? 엄마가 말한 제 의지와는 달리 화가 억제된다는 것도 노화 현상의 하나인 걸까.


하지만 이번 일에서 엄마는, 신체 나이와 상관없이 본인 의지로 화를 비워냈다. 이로 인해 나는 비워내는 방법엔 세월에 쌓인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상하고 섭섭하고 아쉬워 화가 나고, 이런 감정이 불쑥 찾아오는 것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해결책의 핵심은 '붙들지 않고 놓아주는 법을 안다'는 것 아닐까?


나는 아직 방년(芳年)이라 일컫는 꽃다운 나이, 동시에 이립(而立)을 앞두고 살아가는 청년이다. 수련이 부족한 건지, 제때 화를 놓아주면 건강할 수 있다는 그 꿀팁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30대인 이립은 '마음이 도덕 위에 서서 확고하게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고 한다.


난 청년이라 할 수 있는 이 시기를 살고 있어서 내 마음과 생각이 확고하고 굳건해서 화가 나면 화나는 대로 쏟아붓기도 했다. 불의라 생각되는 일에 대응해야 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고, 세상에 맞서 살아가려면 너무 순진해서 안된다는 생각으로 파이트 정신을 탑재했다.


분명한 것은 '자기 방어'라는 것을 남과 관련해서도 하고 있고 스스로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도 철저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화 내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겠지. 수없는 화 그리고 스트레스와 싸워왔겠지. 그러면서 배웠겠지. 때로는 그냥 지나치고 져주기도 하고 속상해하지 않고 힘 빼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좋다는 것을.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간단히 정리가 됐다.


‘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엊그제의 엄마처럼 미래의 내 배우자에게 같은 상황에서 먼저 “차는? 보험은?”을 묻는 사람이 아닌, “몸은 어떤지, 놀라진 않았는지, ‘그럴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되어야겠다는 소소한 꿈. 인간은 대개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지나간다는 것은, 지나가게 둔다는 것은,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다. 내가 마음에서 놓고 보내주어야 온전히 지나가는 것이다. 시간이 해결하는 게 아니라 결국 시간을 사는 내가 맺어야 하는 일.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는 일이지, 별 거 아니야"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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