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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주 Aug 12. 2022

제주의 새

제주살이 - 슬기로운 탐조 생활

제 작년 여름, 아내가 집 앞 공원을 산책하다가 신기한 새소리를 들었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베리굿, 베리굿'하고 운단다. 다음 날 함께 나선 산책길에서 들은 그 새소리는 정말 '베리굿'하고 우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한동안 그 새를 '베리굿새'라고 불렀다. 몇 주가 지나고 우연히 우리의 '베리굿새'가 사실 '개개비'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개비는 몸길이 18 cm 정도의 회색빛 소형새로 강가나 호숫가 갈대밭에 산다고 한다. 여름이 오면 짝을 찾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를 우리가 '베리굿'하고 들었던 거였다. 그러고 보니 공원에는 작은 인공 호수가 있고, 주변으로 갈대가 자라고 있어서 개개비가 둥지를 짓고 짝을 찾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신기한 건 이름을 알고 보니, 울음소리가 '개개비 개개비' 하고 우는 것도 같았다.


개개비를 계기로 새에 관심이 생겼고, 그제야 우리 주변에 함께 살던 많은 종류의 새들이 보였다. 참새나 까치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박새와 오목눈이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주변에서 곤줄박이, 직박구리, 물까치와 까마귀도 보였다. 자연스레 어떤 환경에서 새들이 사는지도 관심이 생겼다. 산새들은 나무가 무성한 지역에서 보이고, 호수에는 논병아리 같은 물새가 보였다. 새를 찾아 자연 속을 다니며 관찰하는 활동을 "탐조 (bird watching)"라 부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보통 새들이 작고 빠르기 때문에 쌍안경 같은 관측 장비나 촬영 장비가 탐조를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어딜 가든 새에 반응하는 버릇이 제주 생활에서도 이어졌다. 우리는 (비싸고) 좋은 장비를 갖춰 특별한 새를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탐조인이 아니다. 그래서 탐조라고 부르기 민망하지만 제주에서 발견한 새들을 소개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새들이다.


1) 제비

제비는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 나오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도심에서 보기 힘들어진 새이다. 제주도 한경면 숙소 주변에서 정말 오랜만에 제비를 보았다. 제비는 V 꼬리와 날렵한 비행 실력이 특징이다. 곤충 사냥의 명수인데, 제비  마리가 일주일에 모기 2~3 마리를 잡아먹는다고 하니 우리에게 고마운 새다. 처마 밑에 나뭇가지와 진흙을 섞어 둥지를 만드는데, 아마도 도심에서는 재료를 구하기 힘들다 보니  보이지 않는  같다. 제비는 제주도 전역에서 흔하게   있었다. 가을쯤 한반도를 떠나 남쪽으로 갔다가 봄이 되면 돌아오는 철새인데, 최근 기후 변화로 돌아오는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아쉽다.


좁은 제비 둥지 안의 네 마리 새끼 제비와 전깃줄에서 경계 중인 어미 제비


2) 섬꾀꼬리

곶자왈 도립공원, 비자림과 외돌개 산책로 같은 깊은 산속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존재를 확인했다. 직접 보기는 어렵지만, 멀리서 들리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사실 섬꾀꼬리로 예상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름이야 어째됐든 새소리는 아름답다. 이럴 때 핑계되기 좋은 유명 구절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로울 게 아닌가?

곶자왈 도립공원의 아름다운 새소리


3) 박새

참새같이 작은 새이지만 머리가 까맣고 뺨은 하얗다. 가슴에는 넥타이를 맨 것 같은 검은 줄이 배로 이어진다. 작고 빠른 데다 높은 나무 위에 주로 앉다 보니 지나치기 쉽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텃새 중 하나이다. 울음소리가 귀엽고 예쁘다. 박새의 울음소리는 나름의 문법이 있어서 문장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짝을 찾고 있는 박새 울음소리


4) 직박구리

직박구리는 주변, 심지어 도심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텃새이다. 크기가 제법 큰데 회색빛 깃털에 몸통에 옅은 회색 빛깔이 얼룩처럼 있다. 빼애액~ 하고 시끄럽게 우는 새가 직박구리다.

사냥에 성공한 직박구리


5) 매

매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동물로 '1950~60년대 전 세계적인 DDT의 사용으로 번식에 큰 타격을 입은 대표적인 맹금류'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 배경으로 제주에서 매를 발견한 일은 매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사냥하는 진귀한 순간을 포착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아침 산책 삼아 둘레길 12코스 '생이기정 바당길'을 걷던 중, 가파른 절벽을 따라 돌아가는 구간 근처였다. 근처에서 푸드덕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깡패 까치가 다른 새를 쫓아내겠다고 위협하는 건가 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낯선 새 발에 낙가 채어져 '짹짹' 하면서 잡혀가는 거다. 그 긴박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낯선 새가 매인 것 같다. 근처에 절벽이 있었고, 공중에서 낚아채며 사냥하기도 한다. 까치처럼 제법 큰 새를 사냥할 수 있는 맹금류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 해안 절벽에서 최소 18쌍의 매 개체를 발견했다는 2020년 기사도 확인했다. 정황 상 우리가 목격한 이 장면은 매의 사냥 후 먹이를 잡아가는 장면인 것 같다.


사냥에 성공한 매. 영상이 짧지만 생생한 장면이 담겨있다.


6) 가마우지

오리도 아닌 것이 바닷물에 잠수해 물고기를 사냥한다고 한다. 오리처럼 기름선이 발달하지 않아 깃털이 물에 젖고, 그래서 잠수 사냥 후 날개를 펴고 바람에 말려야 한단다. 경계심도 심한 편이라 사람 근처로 잘 오지 않지만, 바다 위 파도치는 작은 현무암 바위에 몇몇이 나란히 내려앉아 날개를 펴고 말리는 모습을 여러 번 발견했다. 그중 가장 현장감이 느껴지는 장면을 공유한다.


날개를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


잠깐 딴 얘기지만, 한경면 바다 한가운데는 수수께끼의 건물이 떠 있다. 등대도 아니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 동영상 배경에 있는 검은색에 붉은 가로줄이 있는 건물이 그것이다. 한경면 용당리와 용수리 바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걸로 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미스테리한 이것의 정체는 바로 국내 최초 파력발전소이다.



그밖에 새들

까치

까치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새 중 하나로 제주도에서도 종종 관찰된다. 흰색 깃털이 포인트인 카치는 덩치도 큰 편이고 무리 지어 다니는 편이라 찾기 쉽다. 적응력도 강하고 사람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로 똑똑한 새로 알려져 있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어슬렁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동네 깡패 같다고 한다.

원래 제주도에는 까치가 없었다고 한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얘기처럼 까치를 길조로 여겨 제주도에 까치를 인위적으로 방사했다고 한다. 뛰어난 적응력으로 제주도를 접수 후 제주도 고유 생태계를 망쳐버렸다는 소식이 있다. 까치는 잘못이 없다. 그저 주어진 환경이 적응해 살았을 뿐. 역시나 어설픈 인간이 문제다.


멧비둘기 (산비둘기)

까치만큼이나 우리 주변에 흔한 새. '후~쿠-욱 쿠쿠' 하고 운다. 울음소리는 글자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아쉽다. 멧비둘기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살던 텃새이고, 여전히 전국에서 흔히 보이는 새이다. 우리가 회색이나 흰색의 매끈한 집비둘기와 달리, 멧비둘기는 갈색 깃털 끝을 따라 밝은 빛깔 때문에 생선 비늘 같은 패턴이 보인다. 제법 경계심이 있는 편이지만 큰 덩치와 고유의 울음소리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참새

참새는 해가 뜨는 아침이면 주변에서 시끄럽게 지저귄다. 높은 나무 가지나 정자 지붕 위에 모여 앉아 시장통처럼 시끄럽게 울어댄다. 카페 주변에서 사람들이 흘려놓은 빵 부스러기를 물고 가는 참새도 가끔 찾아볼 수 있다. 참새들은 무서운 천적을 피해 덜 무서운 사람 주변에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보이던 참새도 농약 사용 등으로 제비와 함께 개체수가 급감했다. 최근 약한 증가세를 보인다고 하니 다행이다.


백로

한경면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하면서 발견했다. 까만 현무암 해안에 앉아 있는 하얀 백로는 유난히 눈에 띈다. 해안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모인 것 같다.


청둥오리 (암컷)

청둥오리 역시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서식하는 텃새라고 한다. 화려한 청록색 머리가 수컷이고, 밋밋한 쪽이 암컷이다. 신창리 해안에 모여있는 청둥오리 암컷이 인상적이다.


신창리 해안에서 볼 수 있는 백로무리와 천둥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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