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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logic Sep 29. 2022

무리에서 쫓겨난 수사자처럼...

비 오는 공작실 창가에 앉아...

제왕 사자의 슬픈 숙명

아프리카 초원의 최대 강자인 사자들 중에서도 수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의 자기 영역뿐 아니라 사자 가족 안에서도 무서울 것이 없는 존재이다. 암사자들의 사냥을 멀리서 지켜보거나 게으르게 돕다가, 사냥의 성공을 확인한 후에야 가장 먼저 맹렬하게 사냥감의 가장 부드러운 고기를 뜯어먹기만 하면 된다. 

수사자는 그 존재가 위엄이고, 포효가 곧 법이다. 

물론 늙은 모습을 보이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언어 습관상 이빨 빠진 호랑이를 가장 불쌍한 존재로 생각하지만, 갈기 빠진, 아니 늙어 빠진 수사자의 몰골은 이빨 빠진 호랑이의 그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백수의 제왕인 수사자의 적은 젊은 수사자이다.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자들의 집단에 젊은 사자들이 침입해 오면 지금까지 그들을 떠 받들던 암사자는 결코 늙은 수사자의 편이 아니다.

 

암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릴 적 친구들 싸움을 지켜보며 비겁하게 우물거렸던 이야기처럼 - 이기는 편이 곧 내편이다.


늙은 수사자는 힘이 왕성한 시절에야 젊은 사자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젊은 수사자들에게 힘으로 밀리게 되어 무리에서 쫓겨나면 그들의 아내들은 모두 젊은 수사자의 차지가 되고, 그 암사자의 사이에서 낳았던 자식들마저 처참히 죽임을 당하게 된다. 암사자들은 매정하지만 젊은 수사자의 체제를 너무도 쉽게 인정하고, 그들과 새로운 자식을 낳아 가족을 꾸미는 일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공작실 창밖에 비가 주절거리니 슬픈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러나 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종족을 지키는 하나의 법칙이니 받아들여야 할 숙명일 뿐이다.


그리고 사자의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비하면 전혀 슬픈 일이 아니다.


어려운 공채 시험을 통과하고 상사들의 모진 수모와 거래처의 갑질을 이겨내고, 야생 사자 수명의 두배가 넘는 30년 가까이 일해 왔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물러난 친구들의 이야기는 진정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손수건 준비하시고... 


대기업 임원이 되는 것을 군대에서 별을 다는 것에 비유한다. 

수많은 선후배, 동기들을 제치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쉬운 비유로 간도 쓸개도 모두 내놓고 회사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대기업 상무가 되면 검은색 대형차와 번듯한 사무실, 자기 업무를 챙기는 여비서, 한도가 가늠이 안 되는 법인카드 등 사회 초년생들이 꿈에서나 그릴 법한 혜택이 주어지지만,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대기업 거래처 여직원이 "여기 계속 있다가는 너무 바빠서 시집도 못 갈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 상무님은 집에를 못 가세요."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은 가족을 위해, 가족을 버린 듯 살아야 한다.
많은 수컷들은 가족을 위하여라고 포장을 하지만 수컷들의 거친 세상에서 남들을 앞서 나가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실패한 프로젝트의 책임자 명단에 주도권도 없었던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본인이 반대했으나 본부장의 명에 따라 진행했던 제품의 실적이 저조한 것이 마치 내 책임인양 질타당하는 울분을 맛보고 있을 때 즈음하여 인사팀장과의 면담 또는 메일 한통으로,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면직되었음을 통보받게 되면 사냥 능력 없이 무리에서 쫓겨난 수사자의 모습보다 더 처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계약기간이 남은 상황에서 면직 통보를 받은 임원이 부당함을 토로하고 자기 자리에 돌아왔더니, 벌써 회사 전산망에 로그인할 수 있는 계정의 접근 권한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자동차 키, 법인카드, 회사 계정 권한, 수족과 같던 비서의 도움이 사라진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명함이 없어진다. 누군가의 말처럼 남자의 힘은 지갑과 명함에서 나온다는데, 두 가지 모두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명함은 수사자의 갈기와 같은 것이다. 한순간에 권위를 상징하는 갈기와 발톱, 이빨이 한꺼번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때를 대비해야 한다.

수사자는 아내와 자식들까지 모두 빼앗기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편 인 척하는 처자식과 배짱이 남아 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내 사업을 시작했던 나는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능력 한계를 인지하고 나서 곧바로 인생 2막을 준비해 왔다. 준비 없이 나이 들어 힘 빠진 수사자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그 준비가 없었다면 오늘 이렇게 비 내리는 공작소 창밖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일 중에 "만들기"를 택했다. 

평생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 생산해 오던 상품들에서 벗어나 내 몸을 쓰기로 한 것이다. 

톱과 망치를 들고 나무를 자르고 붙일 수 있는 힘도 있고, 납땜인두를 쥐고 장난감 회로를 꾸밀 수 얕은 지식이 있음에도 감사한다. 손발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만들고, 알량한 지식 팔이라도 하여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가능성을 보며, 경쟁에 시들어 갔던 창작의욕에 불을 지피고 있다.


쫓겨나기 전에 발을 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바쁜 업무를 끝내고 퇴근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낸 후에 느끼는 달콤한은 참으로 지대하다.

그래서 갈기가 빠지고, 젊은 수사자가 나타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갈기에 윤기가 떨어져 가는 대한민국의 중년들은 현재의 일상을 벗어날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사자보다 좀 나은 세상을 살고 있다.

최소한 대부분의 아내와 아이들은 회사에서 잘린 남편과 아빠를 쓰레기 통에 버리고 새로운 강한 수컷이나 돈 많은 아빠를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수컷들은 위안이 되시는가??^^


비 내리는 공작실 창가에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2022년 9월... 여름이 지나간 팔판동 공작실 밖에 때 아닌 비가 오고 있다...>  <photos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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