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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PD May 11. 2019

인생은 왜 살까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는 19살의 논리 없는 주장

뭔가 엄청, 엄청 사랑했던 그 시기.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그러니까 예비 고3.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춥고 외로웠던 시기. 나는 대전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지만 예비 고3을 맞아 대치동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겨울방학 두 달간 머물게 되었다. 그 곳은 정말 춥고 외롭고 삭막했다. 세상이 회색이었다. 스카이캐슬 아니다. 그 친구들은 대치동 고3 치고 너무 활기차다. 모든 아이들이 표정이 없다. 무서웠다. 나까지 얼어가는 것 같았다. 아, 그 속에서도 작은 풀잎같은 친구를 만났긴 했다. 제주도에서 온 동갑내기 남자아이였다. 나처럼 타지에서 온 친구라 공감대가 많았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외로워 내가 먼저 밥을 같이 먹자고 말을 걸었고 우리는 곧 친해졌다. 그 친구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학원 마지막 날에, 내가 그 당시 학생기자로 활동하던 신문사의 기자 명함을 내밀며 '서울대에 가면 꼭 연락하라'고 했었는데. 연락이 없네. SNS에 검색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나쁜 머리를 가진 덕분에 이름조차 가물거린다. 그 때 외워야했던 수 많은 영단어에 밀려서 지워졌나. 참 싫다. 서울대에 가지 않았어도 좋으니, 아니. 어디를 갔든 상관 없으니. 혹시나 이 글을 본다면 꼭 연락을 주기를.


 대치동 이야기를 시작하니 서론이 길어졌다. 하여튼. 그래. 대치동 생활을 잠깐 했었다. 모든 아이들이 회색인 그 도시에서 나 혼자 노랑색인 아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꿈이 없고 표정이 없고. 오죽하면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봤을 때도 그 아이들은 모의고사 문제보다 맨 앞장에 적는 희망 학과를 더 어려워했다. 선생님은 항상 학교 레벨이 높지만 경쟁률은 낮은 학과들을 추천해주고 그것을 쓰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한국외대 아프리카어학과를 많이 얘기하셨다.


  그런 회색 생활이 이어지던 도중, 학원 선생님께서도 잠깐 지침과 동시에 본인의 청춘과 식견을 자랑하고 싶으셨는지, '너희는 인생을 왜 산다고 생각하냐.' 라고 학생들에게 질문하셨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없어서 선생님은 약간 민망하셨는지 급기야 앞자리부터 한 명 한 명씩 말 해 보라고 하셨다.

'모르겠어요.' '좋은 직장에 다니려구요.' '...' 등등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선생님은 크~ 하는 특유의 아재 리액션과 함께 '역시 애들은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내 무용담을 들려주며 어서 이들에게 동경의 눈빛을 받고 싶다.' 하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두근두근. 모든 아이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치동 학원생활 이례로 처음으로 나에게 많은 학생들 앞에서의 발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관심 받고 싶은 마음 반. 평소에 내가 진짜 생각하던 것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반. 나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벅찬 목소리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기 위해서요!'


 교실의 모든 아이들이 나를 미친년보듯 쳐다봤고, 선생님도 당황했다. 어...사랑. 그래 사랑 좋지. 하며 잠시 얼버무리다가 본인이 진짜 하고 싶었던 것 같은 <서울대 합격 후의 머리를 탈색하고 친구들과 놀러다닌 이야기>를 신나게 하셨다. 그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인 듯 이야기 하시는데, 그렇게 신난 선생님의 표정은 또 처음 봤다. 죄송하지만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리액션을 하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왜냐면, 다른 애들은 그 얘기 안듣고 문제 하나 더 풀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남녀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사랑이 포함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계발을 하며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정을 보존시키기 위해 돈을 벌어 오는 것이고.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멋진 사람이 되는 편이 나으니까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가서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세계는 사랑이 없으면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생산력의 근원은 사랑이다. 사랑이 있으니까 의지가 있는 것이고, 의지가 있기에 지구는 망하지 않았다.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지금은, 사랑이 많은 비중을 차지 하기는 하지만 사랑만을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때는 100%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살다보니 사랑이 없어도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사랑은 재밌다. 나는 죽을 때 까지 사랑하며 살고 싶다. '인생이란 여행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 작은 여행들의 연속이 인생인 것 같다. 그 여행의 종류는 항상 다르다. 뭐. 사랑일 수도 있고, 학업일 수도 있고, 진짜 타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당장 내일 친구를 만나러 어디를 가는 것 조차 여행이다. 그런데 그 여행 중에서도 사랑이 단연 제일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결국에는 가장 얻는 것도 많고 가장 추억도 깊게 남는다. 가장 힘들었던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처럼.


 글이 두서 없었지만, 하여튼 서로 좀 사랑하면서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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