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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10. 2019

#1. 육아 에세이의 시작

유모차 부대의 진실

[프롤로그]


육아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사회와 단절됨을 느꼈다.

늘 학교 생활로, 그리고 직장 생활로, 사람들 틈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나는 출산 이후 갑자기 하루 종일 아기와 단둘이 집 안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마음을 덮쳐왔다.

그러나 아기가 성장하고 육아라는 타이틀 아래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또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나는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늘 바랬지만 막상 시작하지 못했던 육아 순간순간의 감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속 작은 욕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이 글은 그 시작이다.

우선 처음은 지금은 20개월이 된 아기가 8개월이던 무렵, 혼자 적어 내려간 글로 시작된다.


——————————

[유모차 부대의 진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었다.

 평일 낮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떠는 유모차 부대가 세상 팔자 좋아 보이던 때.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부랴부랴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바쁜 마음에 그 여유가 부럽던 때.

 하지만 정작 엄마의 삶은 달랐다.

 밥을 먹으려고 하면 어느새 기어와 다리에 대롱대롱 기대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어 이내 수저를 내려놔야 하는 일,
화장실에 가려고 등을 보이면 집이 떠나가라 울어대서 때로는 화장실에 작은 대야를 두고 아기를 앉혀놔야 하는 일(오늘 7시에 기상했는데 세수 1시에 할 수 있었던 거 실화냐),
새벽에 두세 번씩 깨서 꺼이꺼이 울어 남편과 셋이 침대에 둘러앉아 난망하게 하늘을 쳐다보는 일, 그리고 겨우 네 시간쯤 잤을 출근하는 남편의 피곤한 뒷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일,
남편 없이는 베란다에 쓰레기 더미를 쌓아놓고도 분리수거 조차 하러 나갈 수 없는 일 등.

 엄마의 삶은 온종일을 이 작은 아기를 돌보는 일과 그래서 나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함을 겪어내야 하고, 그 누구보다 여유 없는 매일을 버텨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토록 무능력한 적이 있었던가. 나 이대 나온 여자는 아니지만 연대 나온 여자야)

 백화점과 쇼핑몰로 쏟아져 나온 유모차 부대는 잠시 동안 만이라도 숨통을 틀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그립고, 제대로 된 식사 한 끼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 와중에도 아이의 칭얼거림이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해야 하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놀러나 다니는 아줌마들이라는 생각을 지닌 일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도 겪어내야 한다.

 매일 육퇴 후 맥주 한 잔을 찾게 되는 일.
그리고 육아 중인 몇몇 친구들 역시 나처럼 매일 육퇴 후 맥주 한 잔을 찾게 된다고 이야기한 일.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꺼이꺼이 울던 아기가 잠들고 찾아온 육퇴.

이렇게 또 누군가의 부러움, 유모차 부대였던 나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과거의 나에게 만큼은 이 비밀을 말해주고 싶다. 너무 부러워 마시라. 진실을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터이니.


에필로그] 오늘은 맥주가 없다.
그래서 남편의 위스키 중 하나를 골라 홀짝홀짝 마셔볼까 한다. (남편 퇴근 늦을 예정, 물론 있어도 그다지 눈치를 보진 않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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