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원 Sep 04. 2024

13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빛


요즘엔 저녁 8시에서 9시쯤이 되면 동쪽 하늘에서 창백한 점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밝기도, 색깔도 별다를 게 없어 그다지 눈에 띄진 않지만, 이 빛의 정체는 별이 아니라 태양계의 여섯 번째 행성 토성입니다. 약 13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우리를 향해 매일 밤 안부를 전하고 있죠. 지구인들은 그 소식도 모른 채 바삐 살아가고 있지만요.

사진에 보이는 희미한 점이 토성이랍니다.


별은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에 망원경으로 봐도 점으로 보이지만(대신 색깔이 보입니다), 행성은 자기만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히나 토성은 그 주위를 둘러싼 고리로 워낙 유명하잖아요? 아주 큰 망원경이 아니라 아마추어 망원경 정도로도 토성의 고리를 볼 수 있답니다. 몇 년 전에는 프로 야구 경기를 중계하던 카메라가 하늘에 보이는 점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토성과 그 고리까지 잡힌 일이 있었어요. 야구를 보다가 말고 토성을 봤으니 중계진이고 시청자고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KT위즈와 삼성라이온즈 경기에서 포착된 토성. 경기 중계 2시간 57분 12초 ~ 2시간 57분 25초 구간. [영상=MBC Sports+ 중계 화면] (출처 : 헬로디디)


망원경으로 토성을 본 최초의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용했던 망원경은 지금보다 훨씬 작고 분해능(서로 떨어져 있는 물체를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갈릴레이는 토성에 고리가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요. 대신에 그는 토성에 ‘귀’가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거기다 토성의 고리가 수평으로 놓이는 바람에 토성의 귀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죠. 50년 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호이겐스라고 배운 분들도 계시죠?)가 토성의 고리를 발견했어요. 하위헌스는 물리 교과서의 파동 파트에 등장하는 인물인데요, 그는 토성도 발견하고 토성의 가장 큰 위성인 타이탄도 발견했어요. 아, 천체를 더욱 정확하게 관측하기 위해서 진자시계도 발명했고요.  


멀리서 본 토성의 고리는 매끈한 원반처럼 보이지만, 사실 토성 고리는 돌과 얼음들로 채워져 있어요. 수많은 돌이 탑돌이(!)를 하듯 가스 구체를 끊임없이 돌고 있죠. 돌들은 모래만 한 크기부터 기차만 한 크기까지 다양해요. 또한 고리는 돌로 빈틈없이 채워진 것이 아니라 중간마다 틈(간극)이 있어요. 1675년엔 조반니 도미니크 카시니란 천문학자가 이 틈을 발견해서 ‘카시니 간극’이란 이름을 붙였는데요, 우리도 망원경만 있다면 카시니 간극을 볼 수 있습니다. 토성의 발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과학자 하위헌스와 카시니의 이름을 딴 ‘카시니-하위헌스 호’는 1997년에 발사되어 2005년부터 2017년까지 토성 주위를 돌며 임무를 수행했는데, 덕분에 고리의 세세한 구조를 관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NASA/JPL-Caltech/Space Science Institute
이미지: NASA/JPL-Caltech/Space Science Institute
이미지: NASA/JPL-Caltech/Space Science Institute


토성의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바로 토성의 위성이 무려 146개나 된다는 겁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태양계에서 가장 많은 위성(달)을 거느리는 행성은 목성(2024년 기준 95개)이었거든요. 갑자기 토성에서 다수의 위성이 발견되더니 태양계 1위를 차지하게 됐어요. 146개의 달이 뜨고 지는 세계가 상상이 되시나요?(전 안 되네요…) 게다가 토성은 고리에도 돌이 많기 때문에, 토성 주변을 도는 천체가 위성인지, 고리 구성원인지 바로 분간하기가 어려워요. 146개에서 더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토성의 고리는 약 40억 년 전에 소행성과 토성이 충돌해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엔 토성의 가장 큰 위성 ‘타이탄’이 1억 년 전쯤 또 다른 위성(연구팀은 크리살리스라는 이름을 지어줬답니다)과 충돌했고, 그 파편이 고리를 형성했다는 주장이 등장했어요.1 토성(土星)은 이름과는 달리 가스 행성이지만, 대신 수많은 돌을 거느리고 있다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토성이란 이름을 지을 땐 그런 사실을 몰랐을 텐데 말이에요. 토성을 보고 있자니 나의 부족한 면을 채우려고 무리하는 것보다, 내게 없는 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도 방법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여름의 끝 무렵에 동쪽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토성은 내년 2월까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아무리 행성이라고 하나, 희미하기 때문에 도심에선 맨눈으로 찾기가 쉽진 않죠. 늦가을에서 겨울이 되면 토성은 머리 위로 이동할텐데, 근처 천문대를 방문해서 꼭 토성을 관측해보시길 바라요. 토성은 봐도 봐도 참 신기하게 생겼거든요. 그 멋진 모습을 한 번쯤은 망원경을 통해 감상하시기를 바랍니다. 13억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에서 보낸 그 빛이 우리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동안에요.



* 참고로 카시니-하위헌스 호는 멀리서 지구를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토성에서 바라본 지구와 달 사진을 보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등바등, 또는 아기자기하게 살아가고 있네요.

카시니 호가 2013년 7월 19일에 촬영한 지구와 달(NASA/JPL-Caltech/SSI. Edited RGB composite by J. Major)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의 기억을 잃어가는 세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