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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Jul 16. 2022

사과받지 못하는 내 상처

상처였다고 말하면 상대는 둘 중 하나다. 기억 상실 or 나를 향한 비난

넘어졌다. 다리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 벌어진 살 틈으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어디에 이토록 깊게 베인 거지? 찾아보는데….  모르겠다. 날카로운 물체가 보이지 않는다.

오기가 생긴다. 분명히 내 다리를 깊게 벤 녀석이 여기 있는데? 어디에 난 이토록 깊게 다친 거지?


저기 새초롬하게 앉아있는 녀석,

그 돌부리 끝에 아주 미세하게 선홍빛 피가 물들어 있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저 녀석이 범인이다.


근데 이 녀석 신기하다. 굉장히 뭉뚝하게 생겨서 나뭇잎 하나 베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저 돌부리 끝만 꼬챙이처럼 날카롭다.

머리로 베고 자도 그냥 잤을 것 같은 돌 덩어리인데, 그 끝의 미세한 날카로운 부분에 깊게 베이다니..


“아!! 너무 아프잖아!!!”


피가 멈추지 않자 짜증이 벌컥 난 나는 그 화를 표현해 버렸다. 소리를 치고 나니, ‘너무 크게 짜증을 냈나’ 약간은 후회가 밀려오려던 찰나,

돌의 무표정한 표정을 보니 후회가 다시 썰물처럼 밀려간다.


뭐야? 얘?


돌은 (나와는 다르게)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넘어진 건 너인데, 왜 나한테 화를 내?”
“길을 가고 있는데, 네가 거기 있으니까 걸려서 넘어진 거지, 아무 이유 없이 내가 넘어졌겠어? 그리고 이 피나는 것 좀 봐. 어쩔 거야!!!!”
“내 몸을 봐. 이렇게 뭉뚝한 부분이 많은데 왜 하필 날카로운 데 다리를 댄 거야? 뭉뚝한 데에 댔어야지.”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데? 잘못 넘어진 내 잘못인 건가?




돌은 (흔들리는 내 눈빛을 감지했는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치여. 근데 유독 너만 내게 걸려 넘어져서, 그것도 내 날카로운 돌부리에 다리가 찢긴 거잖아. 나에 걸려 넘어진 다른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너처럼 이기적으로 그것을 온전히 내 탓으로 하는 사람은 없었어. 뭉뚝하고 뭉뚝한 나를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돌이라고 여기고 믿는 네가 난 이상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한테 소리를 지르고 못되게 구니? 너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다.”


난 어지러웠다. 내가 지금 돌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만 이렇게 다친 거라면 그건 내가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돌이 저렇게 아니라는데.. 나는 왜 이렇게 돌을 몰아세운 걸까? 사실은 그냥 내가 나약해서 넘어지고 다친 거면서.. 탓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걸까? 내가 이기적이어서 그런 걸까? 난 왜 이렇게 못됐지? 뭐가 문제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내내 계속해서 상처에서는 피가 흘렀다. 지혈을 해야 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나는 울음을 꾹 참으며 다리를 부여잡고 혼자 길을 나섰다. 한 동안 그 길로는 다니지 않았다. 어느 날은 그 돌이 어디에 있는지 멀리서부터 유심히 살피면서 종종걸음으로 피해 가기도 했고, 어느 날은 그 돌이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몰래 지나가기도 했다. 다시는 그렇게 깊게 베이고 싶지 않으니 나부터 잘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악!!!!!!


돌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발 밑만 조심하면서 지나가던 내 이마에 재수도 없게 딱~하고 마주치게 된 것이다. 뭉뚝이든 뭐든 간데 돌덩어리인데 이마가 성할 리가 없었다. 에어리언처럼 금세 부풀더니 멍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아프잖아!!!”
“그냥 친구들끼리 놀다가 너한테 부딪힌 것뿐이야. 또 과민하게 반응한다 너!”
“그게 말이야? 내 이마 좀 봐봐. 이렇게 멍들었는데, 이게 내 잘못이라고?”
“응. 넌 항상 모든 걸 삐딱하게 받아들이잖아. 누가 거기 서 있으라고 했어? 네가 서 있다가 나랑 부딪힌 거면서.. 왜 그걸 또 나 때문이라고 하는 거야?”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아프다고 하면 사과부터 하는 게 먼저야. 다리에서 피가 철철 나고, 이마에 멍이 든 사람이 아프다고 하는데.. 니는 그게 왜 니랑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의도하고 낸 거만 상처고, 네가 모르고 준 건 상처가 아니야? 세상에 100개의 상처가 있으면 99개는 다 모르고 주는 상처야. 네가 받았던 상처도 다 그런 것들이고. 지 상처만 세상에서 제일 아픈 줄 아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 지 아니? 지가 남에게 준 상처는 이거 핑계로, 저거 핑계로 다 빠져나가고 남이 준 상처는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용서도 안 한다는 거야. 상대가 아프다고 하면 사과부터 해. 그러고 나서 니 의도를 설명하는 게 맞는 거지. 니 의도를 상대의 상처보다 더 앞에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거야.”


사자후처럼 휘몰아치게 소리를 친 건 나무였다. 그는 내 손을 낚아채고 씩씩대며 그 길을 걸어 나왔다.

이마가 욱씬대고, 다리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것 같은 아픔에 눈물만 났다.


나무가 말했다.


“실컷 울어. 괜찮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거야.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 건 그 사람의 몫이야. 그래도 넌 아프다고 꼭 말해야 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너니까. 너는 너만이 지킬 수 있는 거니까. 네가 아팠으면 그건 상처야. 다른 사람이 함부로 규정짓게 하지 마. 다음에 만나는 누군가가 또 네게 상처를 주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품을 가진 사람만 되면 돼. 그것만 노력하면 돼. 넌.”


나무의 품에 안겨서 펑펑 울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정도의 품을 가진 사람이 내가 될 수 있을까?’

자신 없었지만 그런 사람이 돼보고 싶다.


내가 틀리지 않은 조각이라고 말해 주는 존재가 여기 있다.

그래, 난 틀렸던 것도, 이기적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팠던 것뿐이었다.


그뿐이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결국 ‘상처를 제공한 사람의 진심 어린 사과 말고는 없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비극적 이게도 상처를 준 사람은 사과할 그릇이 아닌 사람인 경우가 허다하죠.

상처였다고 용기를 내서 말하면 돌아오는 건 기억 상실 또는 나를 향한 비난이에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네가 예민하다거나. (디질..)


그럴 때 하기 쉬운 건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나를 비난하고 파괴하는 행위지만,

우리는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합니다.


용서하기.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상대는 사과도 안 했지만, 혼자서 용서해 주기.


결국은 그렇게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야 만

‘상처’라는 꼬리표를 떼 버려야만

진심으로 내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행동은 ‘용기’로부터 시작됨을 잊지 말아야 해요.

아프다고 말할 용기.

인정할 용기.

버릴 건 버릴 용기.


그리고

용서할 용기.





p.s/ 20년 지기 소중한 제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은 글입니다.

내 인생 가장 올바르고 예쁜 조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너임을 잊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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