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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Jan 26. 2021

가늠할 수 없는 세상

가족이 실종되었을 때

마침표를 찍지 못해 끝내지 못한 문장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20대 후반에 헤어졌던 남자가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휴.. 힘들다. 우리 그만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감정이 복받쳤다. 짐작하고 있었던 이별이었지만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눈물이 툭툭, 떨어지면서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조금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잘 지내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날 밤, 다음 날 집착하듯 전화를 걸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이별은, 그래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끝난 헤어짐은 상처가 되었다. 내 손으로 닫지 못한 문. 강제로 눈 앞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힌 찰나의 순간 속에서 남은 감정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짧은 사랑 관계에서도 마침표는 필요했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사를 지나쳐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세상들이 있다. 아끼던 사람이 그 세상의 귀퉁이에서 살았던, 살고 있음을 비출 때 커다란 얼음 조각이 가슴에 쿵, 하고 박히는 기분이 든다. 입 밖으로 꺼내는 모든 말들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 난 입을 다문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도 그랬다. “겨움이의 sns를 보면서 나보다 어리지만 더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겨움이와 알게 되었던 그쯤, 저희 아버지가 실종되셨거든요.”


언뜻 비치는 가족 이야기에 아버지의 존재가 없다는 건 이미 눈치챈 터였다. 그러나 실종은 감히 추측할 수 없었던 단어였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사실인가.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로 일상을 살아낸다는 건.. 10kg가 넘는 커다란 바위가 발목에 묵인 채로 걸어가는 느낌일 것이다. 모든 걸음이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웃어도 죄스럽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도 죄스럽고, 쏟아지는 빗속에서는 더욱 저린 마음.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난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마음이 아프고 아프고, 정말 아팠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그 사람이 견디어 냈어야 했던 시간들, 지금도 견디고 있을 아픔의 깊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녀도 울지 않는 이 시점에 울고 있단 말인가, “제가 울어서 죄송해요.” 그녀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녀와 헤어지던 순간에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도 모두 던져버리고, 내 심장이 그녀에게 닿을 만큼 꽈악 안아주었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브런치의 다른 글에도 몇 번을 적었지만 아빠가 지금처럼 아프시기 전까지 아빠를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아빠가 아프시고 나서도 복잡한 가족사로 인생의 뿌리가 휘청거릴 땐, 가족의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이제는 순한 양이 되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넘어질까 봐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나의 아버지. 내게 아침저녁 전화로 매번 “고마워”라고 이유 없이 말해주는 따듯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없는 내 일상도 이젠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미움과 사랑의 극점을 오간 마음은 찐득해져서 농도가 짙어진다.


실종된 000을 찾아주세요.


지하철 역과 도로 한가운데 있는 광고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시큰해진다. 죽었다는 사실보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깊은 슬픔일 것이다. 사랑하는 내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살아도 살고 있지 않는 듯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 혼자 이렇게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항상 미안하고 마음 아픈 삶일 테니까.


가늠할 수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더한 아픔은 없다. 모두에겐 자신만의 고유한 아픔이 있고, 그 아픔은 타인의 상처와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아픔에, 상처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내게 닥친 것들이 세상 최고의 아픔인 것처럼 계속 살아간다는 건, 조금은 어리석고 철없다는 것일 테니까. 글을 쓰는 내내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든 좋으니, 소식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어떤 형태로든 마침표를 찍고, 정말 괜찮은 마음으로 그녀의 일상을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비가 스산하게 내리는 오후,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꼭 그녀의 품으로 돌아와 주시길 가장 간절한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 모두가 조금은 덜 아픈 그런 마법 같은 하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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