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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Jun 11. 2023

무한 반복 르네상스

끄적이는 영감 4


보통 우리는 '부흥'이라고 표현하지만, 르네상스의 뜻은 '재탄생'에 가깝다. 이 시대의 화가들이 가장 중시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시적 세계의 재현.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기법 중 하나는 '원근법'이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가 처음 발견한 원근법은 그의 제자 마사치오에게 전달되어 화폭에 펼쳐졌다. 중세 시대의 그림은 적절한 구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오면서, 중심이 되는 대상은 소실점에 두고, 다른 상징들을 거리에 맞게 배치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나는 이 방식이 '스토리'를 담기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폭에 구도가 생기면, 화가가 그리고 싶은 중심적인 인물과 상징들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의 크기나 선명도 같은 섬세한 조율을 통해 스토리는 기승전결을 얻는다. 수직, 수평적 나열로 상징을 드러낸 중세 미술과 달리 르네상스부터는 상징을 '숨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국어로 원근법은 '멀고 가까움'을 드러내는 기법이지만, 영어로는 perspective, '관점'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원근법이 가지는 의미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구상하는 화가의 눈이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지, 화가만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원근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얼마 전 김영하 작가님의 강연을 들었다.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모두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저 입맛에 맞게 편집하며 산다는 것. 그래서 인생이란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인생은 읽기와 쓰기의 결합이고, 읽기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 쓰기는 이야기를 편집하는 과정이다.


관점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 강연이 생각났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세상 만물은 달리 보인다. 그래서 내 삶에 어떤 이야기를 편집하고, 어떤 관점을 가지고 스토리를 써 내려갈지 결정하는 것은 철저히 나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남들이 내 이야기를 편집하게 두고, 사회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의 우선순위로 편집하게 둔다.


내 인생의 편집자가 내가 아닌 것 같을 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은 지점이 있다. 주변에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이게 왜 당연하지?’라고 관점을 달리 해보면,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동네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어림짐작으로만 10년이 넘은 그곳은 아직도 처음 모습과 비슷하다. 오래된 가구와 살짝 촌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있어도 나는 누가 우리 동네를 방문하면 꼭 여기를 데리고 간다.


이 카페는 아르바이트생이 자주 바뀌고, 사장님이 꽤나 혹독하게 교육하시는 스타일이다. 여기 치워라, 저기 닦아라, 사장님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교육 강도가 심한 날이면 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곤 했다.


어느 날 카페에서 글을 쓰다 말고 문득 이 관점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손을 멈추고 카페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낡았지만 깨끗한 카페 내부가, 냄새 한 번 난 적 없던 화장실이, 지문 한 점 없는 창문이 보였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페를 이 모습으로 유지한건 바로  사장님이었다.


카페에 들어서면 고소하게 풍기는 원두 가는 냄새, 주문하지 않아도 들리는 “아이스 연하게~?”,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진한 커피, 운이 좋은 날 서비스로 주시는 갓 구운 머랭 쿠키, 신메뉴라며 처음 보는 디저트를 나눠주시고는 맛있냐며 반응을 기다리는 사장님의 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을 10년 동안 동일한 온도와 색감으로 느껴왔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얼핏 가게를 내놓으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갑자기 많이 아쉬워졌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점령한 이 동네에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는 카페는 여기밖에 없는데.

관점을 달리하니 새삼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감사해지고, 아쉬워졌다.

그래서 그날은 맛있지? 물어보는 사장님께 더 큰 목소리로 맛있다고 했다.


당연한 것들에 한 번만 의문을 가져보면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넘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다시 삶이 편집되고 시작된다. 어쩌면 우리는 르네상스를 무한 반복해야 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변태 과정을 거치는 나비처럼, 삶과 자기 존재의 부흥을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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