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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Jun 25. 2023

돼지가 넘어지던 날

티븨중독자의 티븨리븨유 (1)

JTBC 드라마 '나쁜 엄마' 리뷰

약간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드라마 '나쁜 엄마' 정주행을 끝냈다.

라미란 배우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엄마 역할로 내 눈물샘을 자극하셨던 분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정말 극강의 휴머니즘 드라마라서 티슈를 앞에 놓고 비장한 자세로 한 화씩 극복해나가야 했다. 

이런 미친 드라마가 어디 있냐며 욕을 하다가도 드라마가 끝나면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드라마가 주는 교훈은 처음부터 너무나도 뻔했다. 

전개도 초반과 후반에는 지나치게 빨랐다가 중간에는 지나치게 느린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느림의 미학이라고, 그 속에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이 분명했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들은 공감하기 힘든 마을 공동체의 모습. 

공감하기 힘든 것과는 별개로 아름다운 관계였다. 

특히 동갑의 자녀를 둔 삼식이 엄마와 강호 엄마를 보며, 

'긍정적인 애증 관계'란 저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부러워하기도, 시샘하기도, 안타까워하기도, 위로하기도 하는 그런 관계. 

그러나 그 시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관계. 

계속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이런 공감 속에 담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 때문인 것 같다. 


프롤로그에 나온 돼지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라미란 배우의 극 중 직업이 돼지 농장 주인이라, 돼지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없는 동물이라, 하늘을 보려면 넘어져야 한다는 이야기.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넘어지고 깨지는 ‘상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 상태의 변화가 이렇게 슬플 줄은 몰랐다만)


6월에는 몸 공부 마음공부(?)를 많이 했다. 

운동도 격일로 꾸준히 하고 있고, 명상은 거의 매일 하려고 노력한다. 

왜 사람들이 명상을 그토록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내 의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과 닫아두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해도 12월부터 이어진 ‘공식적’ 답보 상태에 마음 한쪽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의미로 인간이 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생산성이 없다는 것은 곧 어떤 것도 책임지지 못한다는 뜻과 같았다.

나는 나에게 자유와 책임을 줄 의무와 권리가 있기에, 넘어지는 돼지처럼 상태를 바꿀 것이 필요했다. 


돼지도 넘어지는 게 무섭다.

넘어진 후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 봐, 넘어지고 올려다본 하늘에서 비가 내릴까 봐,

온갖 경우의 수들이 넘어지려고 하는 몸을 다시 바로 세우고, 포기하게 한다.


계속해서 넘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가

내가 넘어지는 데에 약간의 쿠션 역할을 해주지 않았을까?


휴머니즘 영화나 드라마가 예전에 비해 힘을 못쓰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드라마 쪽에서는 신원호 pd 사단이 이끄는 시리즈들을 제외하고는 장르물 위주로 흘러가는 듯하다.

이렇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휴머니즘 드라마들을 보면 

아직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버리지 않았구나, 원인 모를 안도감이 든다.

선과 악이 대결하면 언제나 선이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선이 이기기를 바란다는 것. 

성공과 실패는 늘 한쌍이라는 것.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 때문에 잊고 있던 ‘사실은 옳은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콘텐츠가 한 번씩은 필요하기 때문 아닐까?


눈물을 펑펑 쏟는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면,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싶다면, 

우리네 엄마가 얼마나 착한 엄마인지 알고 싶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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