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lking Disciple Nov 02. 2019

바스키아와 21세기의 도시 예술


장 미쉘 바스키아는 과연 21세기의 도시 예술, 음악, 문화에도 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예술가의 삶에는 단지 수 백만 달러에 팔리는 가장 비싼 그림을 그려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스트 빌리지와 장 미쉘 바스키아는 80년대에 이미 21세기의 현대 문화를 혁신적으로 형성했다. 만약 그가 오늘

살아있어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할 것이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류사회로 나아가서 우리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83년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그림 작업 중인 장 미쉘 바스키아. PHOTOGRAPH BY LEE JAFFE/GETTY IMAGES.


지난 2017년 소더비 경매에서 한 그림이 무려 1억 1천 오십만 달러(약 1,200억 원)에 낙찰되어 미국

출신의 아티스트 작품으로써 최고가를 기록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었다. 그 그림은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이었다. 또한 브랜트 재단 박물관에서 가장 최근에 열린 바스키아 전시회는 엄청난 수의 방문객들을 끌어 모았다. 그만큼 그의 창의력과 독특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바스키아의 삶은 그래피티 센세이션을 일으킨 거리 예술가에서 예술계의 혁신적 아이콘이었던 앤디

워홀과 키스 헤링과의 협업을 통해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기대를 받은 차세대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극적으로 변화해 왔다.

그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은 단순히 그림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직접 제작하고 출시한 싱글 앨범과 앨범 커버아트로 확대하는 등 뉴욕 지역 내 힙합 문화의 영향력 있는 선구자로 활동하며 캔버스뿐 아니라 벽, 건물, 그리고 나무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등 기존의 전통을 파괴하는 역동적인 방식으로 예술과 문화를 통해 당시의 예술가들을 매혹하고 고무시켰다. 그의 두드러진 스타일은 단지 기술적인 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난,

인종, 불평등, 정치, 그리고 사회적 계급과 체제 사이의 권력 투쟁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원시적이고 정직하며 직설적인 견해와 묘사를 통해서 확연히 표현된다. 그는 인생, 인간, 사회에 대한 공격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그의 그림, 시, 그리고 음악과 결합하여 신표현주의와 프리미티비즘의 영역으로 차별적으로 구현해내었다. 그 결과, 그의 작품 컬렉션은 도시 문화의

영역을 넘어선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현대 미술계의 스타덤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영향력을 통해 바스키아는 교외지역의 다리 밑의 버려진 벽에서부터 거대한 캔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하여 차별화된 자신의 작품을 구현해내었으며, 특히 거대 캔버스에 그려낸 1982년 작 “무제”에서 붉은색과 검은색을 조합한 검은 두개골을 묘사했으며 이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정석에서 벗어난 바스키아의 인생 여정은 그의

그림을 더욱 매력적이고 정직하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일상적인 풍경이었던 길거리, 건물, 장소, 그리고 이스트 빌리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통해 축적된 삶을 있는 그대로 경험함으로써 그의 삶은 다양하게 혼합된 대중문화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고향인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는 도시

예술을 위한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문화적 기반을 형성할 만큼 역동적이었다. 이스트 빌리지는 80년대에는 일종의 멜팅팟이었고 많은 이민자들이 정착을 위해 꾸준히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트 빌리지는 다른 도시에 비해 유난히 그래피티,

스케이트 보드 등 청소년 문화가 많았다.

이스트 빌리지의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며 충분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근무환경은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다.

이는 이스트 빌리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일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의무감이나 방해 요소 없이 예술적 혹은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 쉽게 모여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스트 빌리지는 대부분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청소년 문화도 결국 예술, 그림, 춤, 음악, 그리고

다양한 외국의 문화의 영향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로 탈바꿈되었다. 이러한 융합적 요소들은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미국 내 새로운 르네상스의 시작을 나타내는 반문화, 거리 및 도시 예술, 펑크록과 힙합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의 탄생과 90년대에 들어서며 주류가 된 팝 문화 신드롬을 이끄는 새로운 서구 정체성의 상승을 이끌었다.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스트 빌리지의 평균

연령대는 20세부터 34세 사이이며 도시 전체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이스트 빌리지는 여전히 지역 특유의 젊음과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의 이스트 빌리지는 빠르고 유행을

따르지만, 취약하고 불안정한 환경에 처해 있다.

펑크의 발상지로 알려진 클럽 CBGB와 100년 이상 된 이탈리아 빵집인 데 로버트리스 패스티세리아와 카페가 최근 모두 문을 닫았다. 비싼 아파트 임대료와 계속 오르는 생활비로 인해 세입자들과 사업자들은 빠르게 도시를 떠나게 되었다. 급속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일과 생활 면에서 예전과

더 이상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많은 건물들은 존재하지만 전통과 역사를 가진 사람들과 장소는 모두 추억이 되었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문화적 호황기를 누리던 영광스러운 날들의 상처는 가혹한

현실로 전락했다.


“무제” 2017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ADAGP, Paris, via ARS, via Sotheby’s


바스키아의 예술성은 현대 미술 산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 그는 훨씬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첨단 기기와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시대에 맞는 창의적이고

상징적인 작품들을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주변 환경은 이와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정교하게 묘사된 작품을 앞세워 그는 이분법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시적인 복잡성을 모두 이해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그의

그림을 보다 덜 모호하게 보고 관찰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의 작품이 정확하게 의도하고자 하는 이미지, 색, 글, 장면의 의미들을 그저 헤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높은 시장가치는 예술, 문학, 음악, 스포츠,

정치 분야에서 광범위한 문화를 아우르는 현대

흑인 역사의 전환과 변화를 증명해주었다. 바스키아의 예술적 방향성과 작품을 통해 다양성에서 기인한 소수자의 사회적 지위 악화에 대한 저항은 그가 젠트리피케이션과 재개발로 대표되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적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가, 화가, 작가, 시인, 공연자들을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와 저렴한 음식 등 주요 명소를 위해 이스트 빌리지에 왔다.

이러한 추세는 바스키아가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서 발돋움할 수 있게 해 준 핵심 요소들로

작용했다.


바스키아는 21세기에도 성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사회문제가 여러 측면에서 악화되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생동감 있고 정직하며 과감한 화풍을 지닌 그의 독특한 관점은 현대인들에게 현 사회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위한 생생한 매개체가 될 것이다. 그가 40년 전에 작품을 통해 이미 입증하였듯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네트워크와 연결성의 힘을 더한다면 그의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기술의 융합은 창의성을 높이고

작품들이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도록 그의 예술성과 장인 정신을 분명히 향상시켰을 것이다.


작품을 통해 바스키아는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할 일은 바로 정직, 시대정신, 영혼, 철학, 시, 가사, 그리고 창의성으로 무장한 내면의 소리가

실제 목소리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회의

공정과 번영을 위한 예술과 문화의 목적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수집가들은 바스키아의 작품을 경매를 통해 구입한다. 그가 타계한 지 3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보기 위해 수많은 대중들은 바스키아 전시회를 찾아간다. 결국 백인과 흑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 상하층,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한 이분법을 통해 구현된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작품 속 견해와 21세기를 살아가는 관람객들 사이에 공감되는 완벽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관람객들은 바스키아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를 통해 공감과 심지어 동지애까지도 느낀다.

따라서 여전한 바스키아의 인기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어쩌면 세상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엄청나게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마도

그가 살았던 시대와 예술적인 영감을 주었던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평행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바스키아가 가장 즐겨 쓰던 ‘무제’라는 타이틀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정작 의미 있는 요소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중요한 결론을 내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Basquiat on urban cultur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