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그런 예감이 든다. 이 책 서평은 너무 잘 쓰고 싶어서 너무 못 쓸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이반지하님이 볼 수도 있잖아? 그런 맘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통해서 월간 이반지하를 접했다. 스터디 카페에서 점심 저녁을 먹는 내내 혼자 캬캬캬캬캭 웃으면서 들었다. 이반지하에게 스며들었다. 졸업작품에서 남성기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했다가 졸업이 밀렸다는 얘길 듣고, 너무 내 취향이라 이반지하를 사랑할수 밲에 없겠구나 싶었다. 12월 1일 용돈이 들어오자마자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주문했다. 돈 벌기만 해. 진짜.
첫 글 ‘생존자 조심해라’가 예술이다. <퀸즈 갬빗>에서 주인공 하먼을 뒷담화하는 아재들이 나오는데, 거기서 최정상인 보르고프가 “그 애는 고아야. 생존자라는 뜻이지”라고 말한 걸 인용했다. 이반지하야말로 생존자다. 예술에서, 삶에서, 세상에서. 너는 조심해야 해. 나 생존자거든 하는 이반지하의 태도ㅠ 너무 멋져.
글 줬다 폈다 졸라 잘한다. 탄생설화 부분은 진심 아트 같은 글이고. 울먹이기도 했다. 나머지 일기들은 너무 개웃겨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를 적으면서 읽었다. 아 진짜 읽으라고ㅠ
감히 이반지하님과 내 삶의 궤적을 공유하자면.. they도(he/she대신 외국퀴어들 사이에서 부르는 용어ㅋㅋㅋㅋ이 관련 글도 졸라 재밌다) 대학에 와서 페미니즘을 만나고 진지하고 괴로웠고, 느슨해지면서 조금 편해졌다고 했다.
대학교 때 페미니즘에서 배운 것도 많고 아픈 일도 많았다. 그리고 기자 준비를 하면서 삶이 노잼이 됐다. 끈을 꽉 졸라 봤다가 느슨하게 잡아봤더니 어느 틈에서 숨을 쉴 수 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운동가가 되기에도 기자가 되기에도 악바리가 모자라는 인간이다. 생의 모든 과정을 아 ok 나 이런 애구나로 인정해버리니까 편해. 막 너무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 게 느므 편해. 공시하면서 글쓰는 것도 더 잼써졌다.
“나는 글을 써서 막 논쟁하고 지구 끝까지 토끼몰이를 당하고 그런 것들이 다 너무 싫었다. 그리고 싫은 것은 대부분 쫌 옳다. 그래서 나는 그런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쓸 수 없는 인간임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p.355
월간 이반지하와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그냥 이반지하는 사는 게 좀 좋아질 정도로 웃기고 신나고 블랙 코미디 속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밥먹을 때 듣는다. 소화 잘되려고.
월반 이반지하를 듣고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존버의 시간에 고통이 담보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길 하고 싶어요. 존버가 말 그대로 존나 버티는 건데 그 존나가 ‘존나’가 아니고 그냥 ‘재밌게’ 버틸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요소를 계속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 오염된 상태로 같이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순수하지 않게. 다 섞이고.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월간이반지하 2호>
시험 공부만 죽어라 하는 것도 멋지지만 비현실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 뭐 하루는 가능하겠지. 시바 내가 그걸 할 수 있으면 신림동에서 행시준비했지. 연산동에서 스터디카페에서 수영하면서 맛집 찾아다니겠냐. 내 삶의 한 토막 쯤은 내가 웃겨하는 방식으로, 나다운 방식으로 기록해두고 싶어졌다. 이반지하의 글과 말은 자꾸 뭘 하고 싶게 만든다. 진정한 예술가다. 영감 그 자체. 나에겐 너그러워지고 세상엔 방패막이 생기는 글들.
이반지하 사랑해요
이 에세이를 읽고 they를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야.
역시 이 서평 별로다. 하지만 이반지하라면 이랬을 거야. 남성 친구들이라고 생각해보세효. 대충 책 표지만 찍고도 서평을 당당하게 올릴 겁니다. 우리 여성친구들 너무 주눅들어있어요.
어깨 펴자 얘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