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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석 Feb 20. 2021

최초의 속임수, 혹은




한 자릿수의 나이에 대한 기억은 너무 흐릿하고, 미약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최초의 활자 창작물은 10살 때 쓴 시였다. 아마도 학교 숙제였던 것 같다. 일상의 한 장면을 시로 써야 했다.


10년을 사는 동안 읽었던 시라고는 몇 편 없는데, 그 몇 편마저 아름다운 동시뿐이었다. 며칠을 골몰하던 나는 어두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키우던 병아리가 죽었던 일, 경비실 아저씨 허락을 받고 아파트 화단에 묻어준 일, 나무젓가락으로 십자가(무교지만 어디서 본 건 있었다)를 만들어 꽂아준 일 등을 시로 썼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지만, 어쨌든 꽤 많은 시적 장치(?)가 들어간 건 확실하다. 좋게 말해서 장치였고 제대로 말하면 미사여구였다. 찔끔 흘린 눈물을 조금 더 늘리고, 두어 삽으로 끝난 땅파기를 여러 삽으로 부풀렸다. 그래야 분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10살이 구현할 수 있는 어휘는 한정적이었으니 차라리 다른 부분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시간과 과정과 감정을 더욱 늘여서 쓰는 것. 장르를 떠나서 무조건 길게 쓸수록 좋은 거라 믿던 때였다.


그렇게 들고 간 시를 교실 앞에서 발표하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울었다. 지금도 믿기 힘들지만, 그때는 더 믿을 수 없었다. 이걸요? 왜요? 선생님 이거 뻥인데요? 등의 생각 때문에 오히려 죄지은 기분이었다. 문학이라는 게 늘 사실만을 말할 수는 없다는 걸 그땐 알 수 없었으니, 나는 어른을 속였다는 죄책감으로 우울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엄마는 오히려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당연했다. 10살짜리 어린이가 꾸역꾸역 의무감으로 쓴 글이 50대 어른을 울렸다고 하는데 쉽게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린이의 허풍은 대개 그런 거니까. 나는 이중간첩이 된 것처럼 학교 안과 밖 모두 속인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이후 혼자서 절필 선언을 했다. 살아갈 날이 엄청나게 남은 입장으로서 나름 무거운 결정이었다.


가끔 이 기억을 떠올리면 아쉬울 때가 많다. 조금만 더 일찍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다면. 죄책감을 덜어내고 선생님께 정중히 눈물의 의미를 물어볼 수 있었다면. 그건 속임수가 아니라 문학이 주는 힘이라고 누군가가 알려줬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다른 결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당시의 절필 선언을 거두고, 지금은 활자 매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 종종 ‘에세이를 쓸 때마다 거짓말하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하는 수강생을 만난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겪은 일을 차분히 전하면서,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글쓴이의 능력이라고 꼭 강조한다. 자신이 거짓말처럼 글을 쓴다고 경계하는 사람은 진짜 거짓말처럼 글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과장된 진실을 자랑하는 사람이 거짓말만 쓴다.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글쓰기 수업이 벌써 3기를 앞두고 있다. 2기 수강생은 오늘 막 졸업했다. 4주 과정에 ‘졸업’이라는 단어가 조금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매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다. 졸업생들이 앞으로 쓸 글은 어떨지 궁금해서 괜히 설레기도 한다. 부디 10살 때의 나처럼 거짓말했다는 죄책감에 묻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 나도 언제든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 선생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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