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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혁 Aug 25. 2020

간판불이 꺼지고 나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비가 오면 매출이 안 나올 것 같았다. ‘비오니까 사람들이 집 밖으로 안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다. 비가 오면 오히려 매출이 잘 나온다. 원두 냄새보다 진한 비 냄새가 코를 찌르고 매장 바닥이 빗자국으로 가득한 날이면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내 근무시간은 24시까지지만 23시가 되면 매장의 문을 걸어 잠그고 간판의 불을 내린다. 매장이 어두워지면 마감을 시작한다. 사람들의 일상으로 북적였던 매장도 적막함으로 가득하다.     


조그만 내 방을 청소하는 것도 벅차하는 나에게 복층으로 된 크고 넓은 매장을 쓸고 닦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화장실을 청소할 때는 예기치 못한 물건들로 생각보다 곤란할 때가 많다. 휴지통으로 들어가지 못한 화장지가 있거나 집에서 가져온 가정용 쓰레기들도 만날 때가 있다. 바닥을 쓸고 닦을 때는 주인들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다. 주인을 기다리던 물건들 대부분은 매장에서 30일을 기다리고 있다가 폐기된다.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자리를 정리하는 일은 늘 어렵다. 빗자국이 묻은 자리는 밀대를 다른 자리보다 더 힘차게 밀어야 한다.     


많은 일이 간판불이 켜지기 전에 일어난다. 도로는 담배꽁초, 침, 우리에게서 나온 종량제 봉투들로 가득 찬다. 더러운 도로는 무쇠로 만들어진 우렁찬 소리의 트럭을 탄 형광색 옷을 입은 이들에 의해 정리된다.     

간판불이 꺼진 길거리의 고독을 찾아 목구멍에 추억을 적셔 집을 찾지 못하는 이들은 푸른 제복을 입은 이들이 집으로 데려다준다. 그들이 가고 남은 거리에는 간판이 켜지기 전의 더러움, 어두움은 없다. 맑음과 밝음만이 남아있다.      


낮보다 뜨거웠던 밤이었을 것이다. 땀으로 몸을 흠뻑 적신 그들은 도로의 간판이 켜지고 나서야 숨을 돌린다. 그리고 또 새벽은 오고 간판의 불은 꺼진다.     


빛이 어두움을 찾아오는 건지 어둠이 빛을 피해 도망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두움 속에도 빛을 기다리며 묵묵히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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