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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둘째냐? 나도 둘째다.

둘째라서... 미안하다.

by 신의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둘째로 태어나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형에게 는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끼고 동생이 죽자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형제간의 경쟁이 성격을 형성한다는 이른바 출생순위 이론이 그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첫째는 패위 된 왕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둘째는 눈치와 타협의 왕이라는데 무릎을 딱! 치면서 어쩜 이렇게 내 이야기냐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할머니 눈치를 보며 밥만 축내는 구박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3대가 살던 시골은 내 전부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남아선호사상은 나의 그 순수한 시절조차 눈물로 만들었다. 친구들이 골목에서 고무줄을 뛰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때도 나는 조막만 한 손으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하고 소꼴을 벴다. 아무리 열심히 집안일을 하고 노력해도 돌아오는 건 칭찬이 아니라 꾸중이었다. 장남인 할아버지와 아빠, 오빠가 집안의 축이 되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6남매 중 막내인 삼촌과 남동생도 더할 나위 없는 대우를 받았다. 결국 남은 건 나와 막내여동생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막내여동생은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채 할아버지가 발라주는 생선구이를 받아먹었다. 대식구들이 함께 앉은 밥상 위에서도 스피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내 젓가락이 움직이면 할머니는 내 손등을 내리쳤고 그때마다 맨밥을 삼키는 나의 목이 메었다. 약을 삼키거나 입안 가득 물을 머금고 삼킬 때도 잘 넘기지 못해 힘들어했다.


결혼을 하고 첫아이와 13개월 차이로 둘째가 태어났다. 어느 날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걸려 이비인후과를 갔다. 가시 빠지라고 맨밥을 삼키게 했다는 말에 내 손가락 두 마디 될법한 고등어 가시를 꺼내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목구멍도 좁은데 맨밥 삼키느라 고생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늘 입안에 밥을 머금고 있어서 충치가 생긴 둘째에게 음식을 빨리 삼키라 닦달을 했었다. 아들은 일부러 안 삼킨 게 아리라 목구멍이 좁아 정말 삼킬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를 닮아 목구멍이 좁았던 것인데 충치 생긴다고 매일같이 등짝만 때린 것 같다.


첫아이는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라서 온 신경을 다 썼지만 둘째는 알아서 혼자 컸다. 장난감이나 옷, 유모차 등 모든 물품들을 물려 썼고 모유까지 먹으며 돈은 거의 쓰지 않았다. 젖만 먹여놓으면 잘 자고 변비도 없었다. 그런 둘째가 내 눈치를 본다. 작년에 수백만 원하는 입시학원 비용을 내가 내서 그런 것인지 재수를 하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지만 아들도 나도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는 않는다. 둘째인 내가 둘째인 아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마음이 아프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사과를 해야 하는데 요즘 둘째 아들 얼굴 볼 시간이 없다. 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또 우선순위에서는 자꾸만 밀리는 것 같아 더 미안하다. 중간에 샌드위치로 끼인 둘째인 나와 둘째지만 막내인 아들의 위치는 다를지 모르지만 둘째로써 밀리고 치이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큰아들이 군대에 가고 둘째에게 집중하고 싶지만 눈에 보이고 한집에 살고 있는 둘째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대에 간 큰아들걱정으로 둘째는 또 밀려났다. 아들러가 말한 출생순위 이론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둘째인 나는 눈치도 없어 타협은커녕 구박덩어리였다. 다만 지금의 잔머리가 어릴 때 눈칫밥으로 생긴 것이라면 조금은 인정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7월 생일인 둘째에게 맛있는 소고기를 구워준다고 특수부위를 구입했지만 맛이 없어 미역국 속으로 다 들어갔다. 그냥 늘 사던 등심을 사지 않았던걸 후회했다. 그래서 생일축하금과 용돈도 올려주고 며칠 눈치를 봤다. 뭐든 알아서 해 내는 둘째 아들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방관자가 된 것인지 의심이 든다. 첫째는 가두리, 둘째는 방목을 한 것이 아닌가 싶어 23년 결혼생활의 시간을 끌어올려 두 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을 해 본다.


오늘은 둘째 아들에게 맛있는 간식이라도 만들어 대령해야겠다. 그리고 7월에 입대해 나라에 몸을 맡기고 월급을 받는 큰아들이 없는 이 시기에 의식적으로라도 성년이 된 둘째 아들에게 애정을 좀 더 쏟아줘야겠다. 아들이자 둘째라는 이름의 동지로써 서러움은 만들어 주지 말자. 깊어가는 여름밤 오늘을 살아가는 둘째인 나에게도 과거의 서러움이 이 뜨거운 여름과 함께 조금은 옅어지길 소망한다. 내 내면의 아이가 오늘 밤 조금은 더 자라났기를 희망한다. 이제는 어린 날 눈물 어린 구박속에서 벗어나 지금의 시간을 즐기며 막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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