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어떤 위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로칼랭 Jun 23. 2021

미움받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면

#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

대학교 때 일이다.


눈을 떴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몸이 나른하고 등이 아픈 것 같은 느낌. 이런 게 몸살의 시작일 거야,라고 나를 설득할 만큼 몸과 마음이 가라앉은 날이었다. 한 시간 정도 고민하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학교에 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왜 안 와? 어디야?"


나는 몸이 안 좋아서 자체 휴강을 한다고 했지만 친구는 집요하게 나를 설득했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날 꼬셨는지 지금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나는 친구의 목소리에 힘을 내 일어났다. 꾸역꾸역 옷을 챙겨 입고 버스를 탔다. 지루한 풍경이 내 앞에서 느리게 이어졌다.


드디어 내가 내릴 학교 앞이었다. 서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버스기사는 버스정류장에 조금 못 미쳐서, 그것도 도로와 많이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문을 열였을 때 발을 내디뎠는데 그때 뭔가 내 앞으로 돌진했다.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는 걸 인식했을 때,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누군가 봤다면 살짝 튕겨 나간 정도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런 경험이었다. 두 다리가 허공에 떠 있었고 나는 내가 추락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교수님이 병실까지 찾아와 위로해주실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이유는 그날, 나를 꼬셔서 학교에 오게 했던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는 자기 때문에 내가 다쳤다는 사실이 미안했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거다. 친구는 교수님들을 찾아가 선처를 부탁했고 나는 4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B를 받았다. 늦게 과제를 제출하고도 A를 받았으니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함께 수업 듣고, 붙어 밥을 먹고, 같이 길을 걷던 친구였기에 우리가 평생 할 것처럼 생각했지만 우리 우정은 길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친구는 한 남자를 사랑했고, 또 사랑했다.

대학 때 만난 그 남자와 이별하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면서도 헤어지지 않았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편지를 쓰고, 면회를 가고, 휴가를 기다렸다.

그렇게 만난 지 7년이 지나고 20대의 어느 날 친구는 그 남자와 결혼했다.


나는 친구의 결혼을 축복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남편 따라 서울을 떠나 부산에 내려가면서 친구는 더 외로워졌다. 남편만 바라보고 지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친구는 그것이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너도 문제가 있어."


이런 식의 대화는 상처를 줄 뿐이다.


"남편은 널 사랑해."


이런 말도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감정을 내가 확신할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친구가 남편에 대해 불평하는 걸 들었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다는 하소연을 듣기만 했다.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자주 통화했고 매번 친구의 슬픈 목소리를 들었다. 그 특별한 어떤 위로도 하지 못했지만 그런 시간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나는 부산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해운대 바다 앞에 호텔을 예약했고 약속 시간도 정했다. 친구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를 만나러 왔고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이 나를 이제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


이런 말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른다.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의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물었다.


"왜?"

"그건.. 그냥 알아."


한 남자가 자신의 우주가 되었던 친구는, 전부였던 세계에서 홀로 서 있었다.


"너는 사랑해? 아직도? 옛날처럼?"

"... 그런 거 같아. 내가 더 사랑했었어. 늘."


친구는 억울한 표정을 하며 눈물 흘렸고, 우리는 호텔방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늦은 밤, 술에 취한 친구 남편이 내 호텔방에 찾아와 내 작은 침대를 차지하고 누웠을 때 나는 친구에게 '너를 이해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 바닥에 이불도 없이 누워 자는 친구 아들을 보고 있을 때, 친구는 내 말이 서운하다고 했다.


친구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 씻고 출근할 때까지 나는 잠을 자지 못했고 생각이 많아졌다.

그날 이후, 나는 친구의 아픈 이야기를 더 들을 수가 없어서 피해 다녔고 나의 바쁜 생활은 서울과 부산이라는 거리를 줄이지 못했다.




사랑의 무게를 저울로 잴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습관처럼 전화통화 빈도와 선물의 양, 나를 위해 시간을 얼마나 내고 있는지를 측량해서 사랑의 무게를 달아본다. 내가 더 뭔가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더 손해 보는 것은 아닌지 계산기 앞에 선다. 그리고 이내 불행해진다.

내가 준 것보다 더 받지 못해서.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그 사랑의 무게를 엄마에게서 찾으며 자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기억이 있던 순간에 오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언니와 나는 왜 차별하느냐고 묻곤 했지만 엄마는 오빠에 대해 '부모님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라고 정리했다.


누군가 사람들이 언니와 나를 보며 '따님이 예쁘네요'라고 한다면 엄마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큰 애가 예쁘죠. 막내는 그냥 귀엽죠."


귀엽다는 말은 예쁜 것과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아버지가 언니를 특별히 챙기는 것도 언니가 '예뻐서'라고 여겼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면서 나는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쳤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잘 보이려고 자꾸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어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사람의 내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알고 있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우리는 가끔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하게 된다. 문제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누워버린다는 거다. 더 노력할 힘이 없다고 말하며 포기한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애를 쓰고, 친구들에게 1번이 되고 싶어서 시간을 내준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에게 최선을 다하는데 언제나 그 관계에는 끝이 있다.

사랑의 무게를 재다가 내가 손해 보는 일이라고 결론 내릴 때 너무 차갑게 관계를 끝낸다는 거다.


이것은 사회에 나가서도 이어진다. 조직에서 사랑받길 원하고 상사에게 인정받기를 꿈꾸며 자신을 괴롭힌다. 나를 좋아해 주는 상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상처받는 건 손해라는 걸 안다.


관계를 이어갈 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적당한지 고민이 된다. 처음엔 너무 친했고 잘 통했지만 어느 날부터 상대방이 나와 거리를 둔다고 고민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제일 먼저 불러서 의논하던 선배가 어느 날부터 다른 사람과 의논하는 걸 봤을 때 상실감을 느끼기도 하다.


나의 존재를 누군가를 통해 확인하는 습관.   

이건 슬픈 일이지만 풀기 어려운 숙제다.




우리는 철학이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었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지가 쓴 <미움받을 용기>가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쓴 '기시미 이치로'는 철학자였고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했다. 아들러 심리학과 고대철학에 관해 왕성하게 집필하고 강연하던 그는 정신과의원 등에서 수많은 ‘청년’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했다.


프리랜서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는 만나 아들러 심리학을 접하고 상식을 뒤엎는 사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기시미 이치로'를 찾아가 아들러 심리학의 본질에 대해 문답식으로 배웠고 그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쓴 것이 바로 이 <미움받을 용기> 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게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가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는 달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세계일 테지."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도 저도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자네는 선글라스 너머로 세계를 보고 있는지도 몰라. 그런 상태에서는 세계가 어둡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 그렇다면 세계가 어둡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선글라스를 벗으면 되네. 맨눈에 비치는 세계는 강렬하고 눈이 부셔서 절로 눈을 감게 될지도 모르네. 다시 선글라스를 찾게 될지도 모르지. 그래도 선글라스를 벗을 수 있을까? 세계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자네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까 그게 관건이지."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지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책은 한 청년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철학자가 그에 대해 대답을 해주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내용의 기초가 되는 것은 '아들러 심리학'이다.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저자는 고루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진리이자 도달점'이라고 극찬한다. 또한 아들러 심리학의 결론은 '용기의 심리학'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의 관한 용기라는 것.

변화할 용기. 달라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그래서 또 미움받을 용기.


"자네가 말한 인과관계에 관해 아들러는 '무늬만 인과 법칙'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네. 원래는 어떤 인간관계도 없는 것을, 마치 중대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납득한다고 말이야. 며칠 전에도 '내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한 탓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네. 프로이트는 원인론 관점에서 보자면 부모의 이혼은 큰 트라우마이자 그 사람의 결혼관과 밀접한 인관관계에 놓여있지. 하지만 아들러는 목적론 입장에서 그것을 '무늬만 인과 법칙'이라며 경계했네."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지 <미움받을 용기> 중에서


우리는 관계 안에서 인정받기를, 또 사랑받기를 꿈꾸다가 좌절하고 상처받는다.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고 열등의식으로 성장한다.

이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도 경험했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주장하지. 즉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네. 하지만 우주에서 혼자 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해.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다면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네. "


"뭔데요?"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모든 고민은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시작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누군가 내 탓이라 말했다고 억울해하고, 내가 한 일인데 인정받지 못했다고 속상해한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혹은 피하고 싶어 하는 지를 가늠하고 그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누군가 나를 싫어해도 '상관없다'는 거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가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후배가 나를 붙잡고 '사람들이 나만 싫어해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싫어하면 어때!'라고 대답해줬다.


지금 내 마음으로 그 시절 친구 전화를 받는다면 해줄 말이 없어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와도 상관없이 너의 자유를 지키라고 말해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