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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Jun 27. 2021

싱가포르에 오면 안 되는 사람들

사실 와도 되긴 하지만...

이 세상에 천국이 있을까? 그런 건 없다. 좋아보이는 싱가포르여도 막상 와서 후회하는 이들도 있다. 성향에 안 맞는다며 빛의 속도로 다시 귀국하는 사람들도 많고. 

 3년하고도 반절 넘는 시간 동안 수십 명의 한인들을 만나고, 일도 같이 해보았으며 친구도 되어보고 절교도 해봤다. 함께 지지고 볶고 태우고 튀겨봤던 내 나라에서 온 사람들. 싱가포르에 오면 안 되는 사람들 의 특징을 적어 본다. 몇 개 해당되면 주재원이든, 이민이든, 유학이든, 취업이든 진지하게 재고해보길 바라며.



1. 더운 날씨를 못 참는 케이스


덥다. 게다가 습하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천둥벼락에 비가 내린다.

싱가포르에는 계절 관련하여 이런 농담이 있다. ‘ We have two seasons. Hot season or f****ing hot season.’ 막상 쓰니까 재미 없는데 사실 재밌다. 왜냐하면 팩트 그 자체이기에. 안 더운 날이 없는 싱가포르. 에어 컨 없이 살 수 없고, 지하도와 쇼핑몰이 필수시설로 자리 잡혀 있고, 매일의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행위가 의미 없는 곳. 한국의 찌는 듯한 장마철 '직전'의 날씨가 365일 지속된다고 보면 된다. 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지 못하는 특이 체질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치게 된다. 몸은 적응하기 마련이나 적응하기까지의 정신력이 여간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보러 한국에서 놀러 와준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은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아우성을 쳐댔다. 

‘너!!!!무!!!! 덥고 습하잖아!!!’

‘나 메이크업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어. 파운데이션이 자꾸 무너져서 미치겠어.’

‘내 앞머리는 어떻고? 계속 기름지고 머리 뽕도 가라앉고 난리다 아주.’


사시사철 더운 나라에 살다보면 어느 덧 무덤덤해진다. 찌르는 듯한 햇빛에 눈이 시리기도, 땀이 줄줄 나서 곤란하고 짜증나기도 하지만 2년 이상 살다보면 아무렇지 않아진다. 앞머리를 안 내린다거나, 빨리 걸으면 땀 나니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거나, 최대한 그늘로 다니거나, 화장을 덜하고, 시원한 버블티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면서 저녁에만 나가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그러나 이게 ‘예삿일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 햇빛 알러지가 생기거나, 아토피가 악화되거나, 피부 트러블이 급격해진다거나, 심각한 땀 분출로 인해 다한증 보톡스를 맞아야 할 정도가 되거나, 집 밖 액티비티까지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힘들어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덥다고 계속 짜증을 부리고 신경질을 낸다.


그럼 싱가포르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더운 날씨와 함께했으니 개의치 않느냐. 그것도 전혀 아니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내게 귀가 딱지가 얹을 정도로 많이 한 말은 ‘oh my god! today is damn hot!’ 이었다.


2. 한국의 유흥 문화에 이미 푹 적셔져 버린걸


뉴질랜드,캐나다는 재미없는 천국. 한국은 끝내주게 재밌는 지옥.


싱가포르라고 왜 유흥가가 없겠는 가. 유명한 곳 몇 군데가 있다. 잘 알려진 클락키나, 센토사의 비치 클럽 및 바, 홀랜드 빌리지 등. 그러나 한국처럼 지옥의 묵시록이 눈 앞에 펼쳐진다거나 신나는 드라마가 빵빵 터지는 걸 생각하면 안 된다. 심지어 코로나가 터진 지금, 10시 30분 이후로 모든 레스토랑과 카페 및 술집의 영업을 종료하고 클럽은 아예 닫힌 지 1년이 넘는 이 시점에서 유흥은 먼 이야기다.


코로나 전에도 마찬가지긴 했다. 한국의 끝장보는 노래방, 길거리, 펍과 라운지바, 클럽, 콘서트, 길거리 취식 등 을 생각하고 온 한국 분들은 심심해하고 견디기 어려워했다. 특히 회식을 좋아하는 부장님-차장님 라인의 주재원들, 피끓는 혈기를 어디엔가 풀고 싶어하는 어린 청춘들의 경우 재미없다고 아우성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합법적이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네처럼 대학생들이 편의점 앞에서 오징어와 과자를 안주 삼아 맥주를 까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심지어 편의점이든 마트든 10시 30분이 지나면 일절 알코올을 판매하지 않는 법도 있다.

 처음에 그걸 전혀 몰랐던 맥주순이 (나) 는 10:29분 가량 기네스 몇개를 골라서 당당하게 계산대로 향했다.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치였는데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네스 두 개 계산이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캐셔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계를 보며 말했다. “지금 술 못 사요.”

“네?”

“시계 보세요. 10:30분 지났잖아요. 못 팔아요.”


이런 나라이니 한국인처럼 흥과 끼와 기와 술.......이 넘치는 민족에게는 가혹하다. 굉장히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 이상으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고 하는 남자분들이 몇 분 있었다.  아무래도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친해지는 경로가 있는 여자분들과 달리 ‘술 한 잔 찐하게 걸치며’ 도란 도란 친해지는 경로가 메인이기 때문인 듯.


3. 한식, 소주, 집밥 처돌이


위에 말한 내용과 비슷한 데, 한식과 소주는 나의 소울푸드이기 때문에 절대 잃을 수 없어 - 라는 사람은 상상 이상 으로 괴로워한다. 한국에서는 집 앞 포차에서 20,000원 안팎으로 소주 한 병과 계란말이정도를 시킬 수 있지만 싱가포르는 세금 포함해서 45,000원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 일단 편의점에서 파는 소주 한 병이 $14이다. 대량구매를 해도 $10 안팎. 실로 엄청난 가격이다. 한국에서의 나는 소주를 줘도 안 먹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없어서 못 마신다. 김밥은 더하다. 김밥 한 줄에 12000원부터 시작한다. 그만큼 한식과 소 주, 막걸리 등등 밖에 나가서 한국 음식과 한국 술, 디저트 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러면 그냥 요리해서 먹으면 되지 않느냐? 굳이 집 밖으로 나가서 매일 사먹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라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일단 싱가포르는 요리하는 문화가 없다. 밖에 나가면 호커 센터라는 아주 저렴한 푸드코트가 있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집은 극소수이다. 따라서 집을 구할 때 기름에 볶고 튀기거나 국을 끓이는 요리를 한다고 하면 난색을 표하거나 계약을 엎는 케이스도 많다. 요리를 원한다면 홀렌트를 하여 집 전체를 빌리거나, 집 에서 어떤 종류의 요리라도 모두 허용하는 집주인이나 하우스메이트를 만나야 하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요즘은 여러 한인 마트가 들어와서 괜찮긴 하지만, 한국의 리얼한 맛 그대로를 내는 것은 요리 초보자들에게 어렵다.


요리에 소질이 없고, 입맛이 까다롭고, 김치와 소주를 못 잃는 사람들이 특히 버거워했다. 싱가포르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요리를 시작할 엄두는 내지 못하거나, 늘 한식을 먹고 싶은데 그러다보니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어 점점 스트레스를 받는 등 의외의 복병이었다.

나는 싱가포르 음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요리를 시작한 케이스였다. 처음은 한인 마트에서 파는 냉동 식품 위주로만 사서 빠르게 데우거나 데쳐 먹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호기심과 재미가 생겨서 쉬운 요리 를 도전했다. 떡볶이, 떡꼬치, 치즈볶음밥, 호떡 등을 만들어갔다. 뭐야, 할만하잖아? 맛있는 데? 현재는 제육볶음 을 만들거나 찹스테이크, 김밥, 불고기, 계란찜, 미역국 등 ‘요리의 구색’을 갖춘 음식을 내 손으로 내오는 중이다.


4. 자생력 제로 심약한 개복치+첫 자취러


해외에서의 삶이 처음이거나, 게다가 자취를 처음 시작한 사람일수록 타격을 크게 받는다. 엄마 없이 혼자 모든 것을 다 해내는 것. 사실 어렵다. (솔직히 아직도 쉽지 않다...... 찌든 때가 안 빠지고 화장실을 청소할 때는 더욱.)

여기서는 도와주는 사람 아무도 없고, 싱글리쉬는 또 어찌나 어려운지 도움을 요청하기도 싫고, 한국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던 바퀴벌레는 왜 이리 많은 건지. 유학 혹은 일을 하고 난 뒤 집에 가면 산더미같이 쌓인 집안일이 기다리 고 있다. 집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사람을 빨리 불러야 하는데, ‘아, 맞다. 내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 이지........’ 하는 깨달음이 명치를 가격한다. 방 안의 에어컨을 계속 틀다보니 에어컨에 문제라도 생기면 골치 아파진다. 습기 때문에 비싼 가죽 옷과 가방에 곰팡이가 생겨서 다 버렸다는 괴담도 심심치않게 들린다. 방 안에 태어나 단 한번도 본 적 없던 벌레가 출몰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불면의 밤이 시작된다. 잠을 아예 못 잔다. 친구라고 생각 했던 작자들은 나랑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니 현타도 오고. 단짝이라고 여겼던 벗은 갑자기 자기 나라로 떠 난다. 아플 때는 가장 서럽다. 말 안 듣는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안 되는 영어로 통증과 상황을 설명하고 미친 병원비를 지불한다. 그리고 집에 오면? 알아서 죽을 끓이든 죽을 시키든 간호와 투병을 동시에 해야 한다.


홀렌트를 해서 집 전체를 계약할 때는 엄청난 부담감에 휩싸이고, 룸 셰어를 해서 하우스메이트들과 분쟁이 생기거나 집 주인과 고성이 오가고 내 돈을 돌려 받네 못 받네 할 때는 악몽 그 자체다.


내게 바퀴벌레, 모기 한 마리는 예사였다. 어마어마한 수의 개미가 하필 내 문짝 위에 개미집을 만들어서 고함을 지르며 뜨거운 물과 비눗물 스프레이를 뿌려대며 수백마리의 개미를 학살한 전적도 있다. 바퀴벌레 세 마리가 갑 자기 창문을 통해 난데없이 들어 온 적도 있다. 두 마리는 어찌어찌 두꺼운 책과 잡지를 통해 잡았는데 나머지 한 마리가 하필 내 옷장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결국 2시간 동안 잠을 못 이루다가 밑으로 내려가서 울면서 경비원 아 저씨에게 옷장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들어갔으니 잡아달라고 굴욕적인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생각보다 자취는 어렵다. 집에 엄마가 없다는 장점이 집에 엄마가 없다는 단점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 느껴보는 외로움과 부담감 및 향수병까지 겹쳐서 한국에 돌아간 지인이 많다.


5. 이미 한국에서의 삶이 상당한 궤도에 올라있던 사람


 게이 친구가 어느 날 나와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창 밖을 바라보며 말해준 얘기다.


“한국에서 언제나 숨어 지낸 기분이었어. 애인이 생기거나 애인과 헤어질 때 계속 거짓말을 해야 했지. 가족들에게도 제대로 말할 용기가 없었어. 여동생만 대충 알고 있을 뿐. 나는 동성을 좋아하는데, 이런 내 자신의 정체성을 들 키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느라 늘 탈진 상태였어. 정신적으로 계속 쫓기는 느낌에 충족되지 않은 삶을 살아왔거든? 근데 여기에서 나는 그냥 외국인 1이야. 오히려 나를 외국인이라는 집단에 속한 한 개인으로 무심하게 바라 봐 줘. 그래서 난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라서.”


나 또한 수도권 대학교를 나오고 학력이 좋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어느 대학교 출신인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관심이 전혀 없다. 묻는 사람도 없고, 알아도 모르는 학교라 그냥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일 열심히 하고 문제 안 일으키는 외국인 중 하나로 스며들 수 있으니 내게는 기회다.


오히려 반대로 한국에서 명문대를 나오고 좋은 회사에서 상당한 보수를 받고 메이저리그에서 놀던 사람이 갑자기 말 안 통하는 타지에 ‘외국인’이라는 라벨이 붙은 마이너리티가 되는 일은 참 낯설다. 상황의 전복이 전격적으로 이뤄진다. 싱가포르는 다행히 한국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어서 차별을 받는 다거나 불합리한 일을 겪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Majority 에서 Minority 로 드라마틱한 변경을 겪는 사람들은 충격을 받게 된다.


이 곳에서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와 ‘나 xx 회사 다니는 아무개인데’, ‘나 xx 출신이야’ 가 통하지 않는다. 전혀 모르고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없다. 영어를 못 하면 더 문제지만.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싱글리쉬를 모른다면 처음에 문화충격을 받는다. 어찌어찌하여 싱글리쉬에 적응이 되더라도 그들끼리 중국어로 속사포 처럼 말하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소외되기 십상이다. 그들만 아는 문화, 그들이 공유하는 유머, 싱가포리언들 이 최고로 쳐주는 대학교 및 고등학교, 중학교, 가족 백그라운드가 없다면 마이너리티로 떨어진다. 먼저 접근하던 사람들이 많던 상황에서 이제는 반대로 내가 먼저 나를 소개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온갖 외국인들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용광로이니 좀 더 세심해야 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반대로 한국에서 마이너리티였던 사람들은 외국에 와서 억하심정 없이 잘 지낸다. 원래 주류에 속해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주류인 것이 익숙하기도 하고, 나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최고 로 대우 받는 삶을 살던 사람들이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채 싱가포르에 오면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다섯 개에 모두 해당되는 가? 주제 넘은 말이지만 당신의 행복을 위해 싱가포르 행을 조금은 말리고 싶다. 두 세개에 해당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왜 싱가포르로 정착하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을 하면 좋겠다.

만약 하나도 해당사항이 없다면 큰 고비를 겪을 확률이 적으니 용기와 설렘을 가지면 좋겠다. 사랑과 기대감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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