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바빴던 2019년. 12월 마지막 주를 쉬면서 조금 숨을 골랐다. 마지막 날이 가기 전 혼자 회고를 남겨본다.
2019년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인간 화개장터'로 살았다.
전주, 광주, 부산, 대전, 군산, 제주, 강릉, 밀양.
특히 전주는 몇 번을 갔는지 모르겠다. KTX VIP가 되었으며(혜택은 별로 없지만) 예매의 달인이 됨. 하지만 너무 정신이 없다 보니 다음 주 표를 끊어놓고 왜 다른 사람이 우리 자리에 앉아 있는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역무원께서 알려주실 때까지 몰랐음) 길치인지라 서울에서도 어딘가 이동할 때 늘 여러 루트를 검색해보는데 전국구로 검색을 하게 될 줄이야.
밀양에 있다가 전주를 가기도 하고 밀양에 있다가 군산에 가기도 했는데 우리나라는 동서를 횡단하는 교통수단이 너무 없다. 오송이나 천안까지 가서 다시 내려와야 했는데 서로 간의 교류가 없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짐도 금방 금방 싸게 되었다. 나는 맥시멀리스트라 늘 짐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하도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배낭 하나에 간단하게 짐을 싸게 되었다. 비행기 좌석 아래 수납되는 수트케이스도 샀는데 짐이 무거울 때를 빼고는 그냥 배낭을 선택했다. 돌아다니는 일이 많을 때는 오히려 수트케이스가 불편해서.
올해 1/3은 밖에서 잠을 잔 것 같다. 내 공간이 없는 집이어서 가끔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 숙소를 잡고 외박을 하곤 했는데 출장 덕분에 여러 숙소에서 지내봤다. 덕분에 집에서 나를 구속(?)하려던 엄마로부터는 조금 많이 자유로워졌다.
탈락을 빼놓고 2019년을 말하기도 어렵겠다. 사실 작년 생각했던 올해의 목표는 영국 유학이었는데 장학금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러고 나서 지원한 모 교육 프로그램도 탈락, 하반기에 지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던 공모사업도 사업비 지원에서 탈락, 독립하고자 신청했던, 사무실 3분 컷 청년 주택도 탈락.
나를 위해서만 내 안에 무언가를 계속 채우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싸인인가 싶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탈락의 해의 경험이 좋은 양분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에너지라고는 0%였던 연세대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나오는데 현선님이 이렇게 얘기하셨다. "올해 하나님이 선물을 주신대. 수고를 다 잊게 할 만큼 큰 선물." 그 선물이 혹 공모사업 합격일지, 아니면 청년주택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어제 대화를 나누면서 깨달았다. 가족의 회복이 일어난 것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것. 내가 기대하던 방식대로 올해가 흘러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가득한 2019년이었다.
일본 다카마츠에서 3년에 한 번 열리는 트리엔날레 세토우치 예술제는 작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자세한 후기는 나 혼자만 갖고 있다. 일본 소도시로의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쇼도시마, 나오시마, 데시마, 오기지마, 메기지마 등등 섬들을 돌며 보냈던 시간 꽤 좋았다. 로컬 관련 사업을 진행하면서 일본 소도시가 많이 생각났다. 물론 무서울 정도로 로컬 관광 상품 등이 잘 되는 이유는 그만큼 일본이 일본 밖을 내다보지 않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올 상반기는 회사에서는 굉장한 반항기였는데 회심한 것도 나오시마 덕분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품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길은 계획에 정말 없던 일이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미국인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나누다가 - '연길을 한 번 갈까?' 하고 말을 꺼낸 것이 시작이었다. 개천절을 끼고 갔다 왔는데 중국은 처음이라, 그리고 친구네 집 인터넷 상황이 별로 안 좋아서 미리미리 준비는 많이 못하고 갔다. 관광은 윤동주 생가가 있는 명동촌만 갔다 왔는데, 더 놀라운 것은 갔다 오고 난 뒤 '북간도의 십자가'를 보게 된 거라던지, 여기서 만난 분들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는 일 등이 일어난 것. 사과 김밥과 찰떡을 먹었던 새벽시장도 넘 좋았다. 양꼬치와 훠궈 먹으러, 다시 갈 거다.
올해 (비교적) 책도 많이 못 읽고 문화생활도 많이 못했다. 그럼에도 신세를 진 콘텐츠를 꼽아본다면.
프린스 알리가 최애 장면. 쉬면서 집에서 한 번 더 봤다.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일도 많고 해서 끝물에 보게 되었는데 MX로 보지 못한 것이 한이로다. 그래도 4DX 맛집 용산과 여의도, 용산 아이맥스 등등에서 잘 관람했다. 여담으로 4DX관에서 스타일러 광고가 나오며 바람이 불었는데 내가 마치 스타일러 속 의류가 된 기분이었다.
다음웹툰에 매주 수요일 200원을 들여 미리보기를 하고 있다. 옥춘편은 정말... 한 20번은 본 것 같다.
여러모로 지쳤었던 1월과 2월을 보내며, 전주로 휴가를 갔다. 서점 에어비앤비에서 읽은 북저널리즘의 책. 아래는 항해일지에 적어놨던 내용.
전주에서 마지막 밤, 읽고 싶은 책을 엄청 골라놨는데 한 책에 꽂혀서 다른 책은 보지도 못했다. 북저널리즘의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야구를 좋아하는 심리학자가 쓴 책-아니 연구보고서인데 굉장히 잘 읽히는 연구보고서다. 보면서 공감 가는 문장이 너무 많아서 거의 다 받아 적고, 혼자 빵 터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읽었다. 나도 슬럼프에 빠져있었나 보다. ‘자기 결정성’ ‘자존감 안정성’, ‘내적 동기’ 키워드 등을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누구나 인생에서 슬럼프를 겪는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종류의 슬럼프든 빠지자마자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슬럼프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조금 빨리 빠져나올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고통스러워도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슬럼프에 빠졌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내가 만난 야구 레전드들은 그랬다. p.41
반항기에 주은님에게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해서 읽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이 싫어서 정반대로 도망가는 요나의 마음을 알면서도 쉽게 돌아오지 못했었다. 그래도 이 책 덕분에 나의 상태를 조금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아래는 나의 상태를 나타내는 일기 중 일부.
4월 3일의 일기 제목: 이렇게 탈탈 털릴 일인가
그런데 오늘 아침 ‘이제 나의 유능함마저 없다’는 게 너무 절망스러웠다.
...
정금같이 되려면 불순물이 다 타버려야 하는데 나에게 너무 소중하고, 오랫동안 박혀있어서 떼어버리기가 힘들다. “네! 기꺼이 내려놓을게요.”하고 고백하기가 어렵다.
밀양에서 책을 읽으며 마음에 찔림이 있는 구절을 적어놓았었다. 이 과정을 겪고 나니 다른 사람들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 것 같은데, 이 구간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한, 우리는 요나처럼 허약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되었든 그로 인하여 교만해지고 그것을 갖지 못한 이들을 깔보게 될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 행복의 토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면, 분노, 불안, 절망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지혜를 지나치게 신뢰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어떻게 굴러가야 하고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지 하나님보다 자신이 훨씬 잘 안다고 생각한다.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은 요나에게 주신 것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는 산으로 올라갔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기를 거부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상기했다.
오늘날 우리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행하신 많은 일이 선명하게 보인다. 당시의 아브라함으로서는 하나님이 그의 믿음을 튼튼하게 만들고 계심을 몰랐을 것이다. 아니,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을 뿐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깨닫고 그 경이로움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없다는 완고한 믿음은 마침내 제거될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분이 나를 위해 그 모든 일을 하셨으니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그분은 내게 기쁨을 주시고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하실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신 것을 알 때, 우리는 상황이 혼란스럽고 어려워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날... 진행하던 사업에서 합격자 발표하고 탈락자에게 기프티콘 보내느라 동행분들을 기다리게 하고, 맛있는 저녁도 못 먹고 정신없이 나섰다. 잘 모르는 노래도 많았는데 가창력이나 연주 실력이 엄청 뛰어나기보다는 담담하게 자기만의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모습이 좋았다. 중간에 음향사고가 있었는데 재치 있게 넘어가던 윤덕원 님도 인상 깊었다. 앵콜 없이 공연장 밖에서 함께 떼창 하고, 종로 거리를 걸으며 '비정한 도시 서울'을 이야기하며 '서른'을 부르던 것도 좋았다.
작년 트렌드 리포트 작업에 '인터스텔라'와 '보헤미안 랩소디'가 있었다면 '겨울왕국2'는 올해 상황을 설명해주는 적절한 영화. 평이 극과 극이지만 나는 재밌게 봤다. Lost in the Woods는 진짜 미쳤다... 계속 웃으면서 보다가 Show Yourself에서는 펑펑 울기도 했고.
밀양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갔는데, 어슬렁대던 아기 길고양이가 쓰다듬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나도 고양이가 생긴 것 같다. 내년에는 목욕을 시켜봐야지.
회사 대표님들, 동료분들 혹은 같이 사무실을 쓰시는 분의 자녀들. 주기적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업데이트하며 힘든 구간을 넘겼다. 귀요미들아 이모에게 힘이 되어주어 고맙다. (*세르보는 사무실이 위치한 빌딩 이름)
우선 프리퀀시 모으고 다이어리를 쓰는 다른 분들의 취향을 존중한다. 작년도 안 받으려다가 프리퀀시 모은 게 아까워 다이어리를 교환했는데, 펼쳐본 적이 일 년에 열 번도 채 안된다. 올해 펜 세트에 혹하기도 했으나 볼펜도 너무 넘쳐난다. 가끔 생기는 프리퀀시는 온라인 장터에 팔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필요한 사람은 쓰면 좋고 나는 떡볶이 값 생기고. 아이패드를 샀으니 거기에 기록을 해보려 한다.
작년 오피스 클로징 기간에는 충동적으로 하노이를 갔다. 좋았다. 또 가고 싶었으나 올해는 가지 않기로 했다. 이미 출장을 많이 다녀왔어서 집에만 있기로. 연말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 그리고 이미 충분히 한 것에 만족하는 것, 나에게 더 맞는 것에 만족하고, 일부러 더 에너지와 돈을 쓰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것. 대신 쉬는 기간 동안 할 일 목록을 작성했는데 소소하게 요리, 빨래나 정리 등등이었다. 거의 다 했다. 맥북도 깨끗하게 포맷했고 내일까지 정리하면 거의 완성될 듯.
군산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시는 90세 어르신의 매대가 너무나도 정갈하여서 놀랐다. 어르신께서는 귀찮다고 여기저기 버리거나 대충대충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집에 와 피곤해서 옷을 아무렇게나 걸다가도 어르신 말씀이 생각나서 그때 그때 정리하려고 했다. 오늘 맥북을 포맷하면서 매일매일 다운로드 폴더와 바탕화면도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실 어딘가를 막 가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없는데 사람들을 만나러 가보고 싶다. 한 달 정도 안식월을 쓴다면 미국 서부 쪽에 계신 분들과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독일과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영국을 가보고 싶다. 둘 다 가보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일단 돈을 모으려고 한다.
요즘 기름진 것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한다. 먹는 양도 많이 줄었고. 12월에는 진짜 힘이 없어서 식욕이 없어졌는데 평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건강한 음식을 더 많이 먹고, 도시락도 더 많이 싸서 다녀야겠다.
그래도 올해 자전거는 좀 많이 탔다. 군산에서도 타고 다카마츠에서도 탔다. 내년에는 운동을 좀 더 꾸준히 하고 따릉이도 더 자주 타고 그래야겠다.
운전을 못하는 게 올해 특히 지역을 많이 다니며 넘 아쉬웠던 부분. 올해의 목표이기도 했으나 하지 못했다. 내년 초에는 꼭 운전 연수를 받아서 어디든 다녀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