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 배우자에 대한 호기심
여기저기서 MBTI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 지도 한참이다.
40대를 목전에 둔 아줌마는 A형은 소심하다던 혈액형 별 성격을 맹신하던 과거를 잊고, "어떻게 사람을 16개 성격 유형으로 나눌 수 있냐며" 무관심한 척을 하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MBTI가 뭐냐고 물어오기 시작하자, 더 이상은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끝나지 않을 듯한 설문 문항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ENTP.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란다.
그러고 보니 20대에도 이런 걸 해봤던 기억이 났다. 나이가 들어도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그때와 변함이 없었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하면 명확하게 이해할 때까지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상 각 알파벳에 대한 특성도 조사해 봤다.
E 외향적. N 직관적. T....
T를 찾아보니... 유독 T의 공감능력에 대한 F의 성토가 이어진다.
흠.. 그런가? 하며
남편의 MBTI를 찾아보니 ESTJ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MBTI 궁합은 '그닥'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꽤나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우리 성격 궁합은 '그닥'이래~."하며 한바탕 웃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닥'일 만도 하다.
같은 E지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바깥 활동을 해야 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일주일 내내 집에 있어도 환기만 할 수 있다면 전혀 답답하지 않다.(사실 그래서 I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굳이 안 나가고 싶은데, 아이들 등하원이나 장 보러 가야 하는 등의 목적형 주부 활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경우도 많다.
N과 S는 어떤가.
나는 항상 뭔가를 상상하고, 이유를 고민한다.
오지도 않은 멀고 먼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되면 좋을지, 이왕이면 같이 죽고, 안 되면 내가 먼저 갈 테니 너는 1년만 애도기간을 갖고 그 후에 재가를 해라 같은 이야기를 웃으며 늘어놓는다.
내 딴에는 남편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며 "너는 언제쯤 죽는 게 좋겠어?"라고 물어보면,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왜 그런 생각을 벌써 하는 거야?"라며 질문을 1도 이해하지 못한 답이 돌아온다. 저렇게 물어보면 예의 상이라도 생각해 보고 자기의 답을 들려줄 만도 한데, 결혼 초부터 줄곧 반복해 온 질문에 단 한 번도 대답을 준 적이 없다.
남편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현실적인 일에는 관심이 있지만, 약간의 상상이 필요한 미래의 일에는 말 그 대 로 상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그다음으로 논란의 T와 F.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너무 공감을 하면 마음속 청개구리가 올라온다.
내가 겪은 상황과 상대방이 겪은 상황이 동일하지 않고, 각자가 가진 배경과 성향이 다르면 받아들이는 감정도 달라질 것인데, 어떻게 쉽게 공감한다고 말할 수 있지?
저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겠다고 이성적으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의 일로 느껴진다.
'네가 어떻게 내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는 거야?'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 게 T인 내가 발휘하는 사회성이다.
남편은 리액션이 크진 않지만, 섬세하게 나를 배려한다.(아마도?)
어쩌면 나의 청개구리를 이미 알고 있는지, 뭐 하나 강요하는 법이 없다. 가끔 나는 남편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지만, 뭐 어떠랴. 내 의지대로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니까 되었다.
뒤늦게 MBTI 검사를 해보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아니다.
다시 한번 '상대방'이라는 개인이 어떤 성향이고 나와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생각하고 대화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막연하게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판단하는 지를 이야기 나누면서 내 배우자가 이런 특성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무리 오랜 기간 연애를 해왔다고 해도 연애는 두 사람 만의 관계이기에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편집해서 보여줄 수 있다. 서로에게 호감 있는 성인 두 사람이 만날 때는 웬만하면 돌발 상황이란 게 생길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면 단 두 사람이었던 관계가 가족으로, 친구로, 자녀로 넓어지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모습도, 어쩌면 나조차도 몰랐던 내면의 상처까지도 까발려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 계기가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살다 보면 돌발적인 사건, 사고는 당연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부부싸움은 그 사건 때문에, 그 사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부부싸움은 그 사건, 사고를 대하는 상대방과 나의 생각이 달라서 일어난다. 상대방이 내가 기대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집안일을 하느라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남편과 시댁에서 기대하는 며느리의 행동과 부인과 친정에서 생각하는 며느리의 행동이 달라서,
아이 교육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고민하는 만큼 상대방은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아서.
한 마디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내가 살아왔던 환경이나 가져왔던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고, 섭섭해지고, 그 섭섭함이 쌓이고 쌓여 화가 나고,
결국 마음속에 불길이 일어난다.
결국 싸움을 피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상대방, 내 배우자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오늘은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어?”
“당신은 이걸 좋아해, 저걸 좋아해?“
“당신은 왜 이런 판단을 내렸어?”
“당신은 아이 교육할 때 어떤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야 배우자를 내 잣대로 판단하거나 오해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배우자에게 나에 대해 끊임없이 알려줘야 한다. 거기에 상세한 이유를 곁들여서 말이다.
“오늘 나는 이런 일을 겪었어. 그래서 내 기분은 이랬지.”
“나는 이러이러해서 저 물건이 아니라 이 물건을 선택했어.”
“나는 저렇게 하고 싶어. 내가 어릴 적에 이런 경험을 했거든.”
“나는 아이들을 이런 방식으로 키우고 싶어. 왜냐하면~”
내가 나에 대해 말하지 않는데 배우자가 알아서 나를 파악하기란 정말 어렵다.
'나에 대해 잘 모른다니, 명색이 배우잔데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자존심 싸움이자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내가 나에 대해 알려준다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뭐 하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심지어 방향이 틀릴 수도 있는 길을 둘러 가야 하나.
어떤 사람을 배우자에게조차 자신을 활짝 열어 보이는 것이 낯설어서, 불편해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재촉하지 말고 나부터 열어서 보여주자.
나에게는 별다른 의도가 없다고,
그저 당신이 궁금할 뿐이라고,
당신을 더 사랑하고,
우리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그렇게 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