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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코 Mar 02. 2020

23. 1달러가 없어서

벨리즈/벨리즈시티

드디어 여행의 끝판왕 칸쿤에 가는 날! 칸쿤을 직항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슬프게도 나는 칸쿤에 가기 위해 벨리즈라는 나라를 거쳐야 한다. 플로레스에서 오전에 출발 후 낮쯤 벨리즈의 수도 벨리즈시티에 도착, 이후 벨리즈시티에서 칸쿤으로 가는 저녁 버스를 타는 시스템이다. 중간에 4-5시간 시간이 비어 잘 때울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그것도 치안으로 악명이 높은 벨리즈 시티에서!

아침에 픽업장소로 빨간 버스가 도착하였고 난 벨리즈시티로 출발하였다. 기사 아저씨는 친절했다. 나를 비롯한 승객들에게 이모저모 도움이 되는 설명 등을 해주는 등 도움을 많이 주려 노력하셨다. 국경에서 남은 과테말라 돈을 벨리즈 돈으로 바꿨는데 남은 돈이 얼마 없었어서 그래 봤자 7 벨리즈 달러가 나왔다.


과테말라 출국심사 및 벨리즈 입국 심사를 넘어 드디어 벨리즈 시티 도착! 표가 매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일단 표부터 사러 버스터미널로 향하는데 이래저래 길에서 더럽게 말을 많이 건다. "택시?" 정도는 기본이며 그나마 이해해 줄 수 있건만, "너 예쁘다. 이름이 뭐니?", "헤이, 어디로 가?" 등 시도 때도 없는 말 걸음과 인사, 폭풍 같은 길을 헤치며 버스터미널을 겨우 찾아냈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엔 거지도 많고 여러모로 할렘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경찰이나 평범한 어린이들도 많았지만 말이다. 또한 흑인이 많아 마치 아프리카에 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터미널에서 미국 달러로 표를 산후 거스름돈으로 1 벨리즈 달러를 받고 나는 동네 구경을 위해 5 벨리즈 달러를 주고 터미널에 내 배낭을 맡겼다. 내 수중에 남은 건 3 벨리즈 달러.

페리 터미널이 그나마 와이파이도 터지고 괜찮은 식당도 있고 하여 난 다시 페리 터미널 쪽으로 갔다. 가서 카드 결제로 밥을 먹고 남은 3 벨리즈 달러로 벨리즈 랜드마크 마그넷을 샀다. 이제 수중에 남은 건 0 벨리즈 달러! 달러와 멕시코 페소 그리고 카드뿐이다. '뭐 어차피 벨리즈는 오늘 바로 떠나니깐.' 이때까지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밥을 먹은 후 벨리즈 Fort 스트리트 빌리지로 산책을 갔다. 주말이라 비록 가게 문은 다 닫혀 있었지만 벨리즈라는 글씨의 랜드마크가 있어 사진을 찍었다. 평일에 갔으면 여러 가게 구경을 하고 재미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원래라면 빌리지 구경에 시간을 썼어야 하는데 문을 닫은 관계로 내겐 생각보다 잉여시간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페리 터미널로 돌아와 와이파이로 웹서핑을 했다.

그러곤 해가 지기 전에 조금 여유 있게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는데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하니 세상에 1 벨리즈 달러를 내야만 이용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이미 모든 벨리즈 돈을 다 써버린 상태, 버스를 타기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오늘 난 500ml짜리 콜라를 마셔버렸는데.', '뭐 땀을 많이 흘렸으니 괜찮을까?' 등 별에 별 생각이 올라왔다. 화장실에 돈을 내는 시스템을 까먹다니! 실수했다.

목이 말랐지만 이후론 물을 마실 수 없었다. 다행히 버스 티켓 오피스에 물어보니 버스에 화장실이 있다고 했다. 그저 내 몸이 버텨주길, 마려운 느낌이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작은 기도를 한채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을 앉아있으니 드디어 시간에 맞춰 버스가 왔다. 짐을 넣어줬다고 팁을 또 달라고 그런다. "난 벨리즈 달러가 없단 말이야." 라며 거절을 했다. 여러모로 미안하면서도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한국 돈으로 500원 정도일 뿐인 그 1달러가 뭐라고 내가 이러고 있지.

버스가 출발했다. 하루뿐이고 경유일 뿐이었지만 조금은 무섭고 당혹스럽고 정신없는 벨리즈에서 드디어 탈출이다.

버스에서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지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새 친해진 건지,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같은 여행도 각자에게 다른 영향을 준다. 이번 여행으로 내가 느낀 성장점 중 하나는 바로 '이 것'인 것이다. 확실히 여행을 다니면 남들 시선 상관없이 당당하게 다니게 되는데, 이 기분 그대로 이어받아 여행 후에도 조금은 더 당당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야밤을 가로지른 버스는 벨리즈 이미그레이션으로 향했다. 하루뿐인데 출국세로 USD 20를 내야 한다. 벨리즈 출국심사 이후 멕시코 입국심사를 했는데 잠깐새 또 짐을 빼고 검사를 하는 등 바쁜 과정이 이루어졌다.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는 건 너무 힘든 짓 같다. 빨리 숙소로 가서 따뜻한 이불을 덮고 쉬고 싶다.


그렇게 다음 날 7시가 되어서야 난 칸쿤에 도착했고 숙소에서 하루종일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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