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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푸딩 Mar 11. 2022

[친애하는 나에게] 01. 물 밑에서

: 글쓰기가 나를 부를 때 

2022년이 되었다. 새해가 되었다고 이전의 나를 없애고 새사람으로 바뀐다거나, 제시간에 눈 뜨는 것 자체가 기적인 내가 미라클 모닝을 해낸다거나, 혹은 장바구니의 임계점은 왜 100개인지 늘 이해 불가 상태의 모태 맥시멀 리스트가 하루아침에 집을 절간처럼 만드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일 따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쯤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올해도 마찬가지로 나는 새로 장만한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을 거라는 부푼 희망을 안고 다이어리를 주문했다.




새 차를 사면 고사를 지내고, 이사를 가면 집들이를 하듯 새 다이어리를 샀으면 응당해야 하는 의식이 있다. 바로 버킷리스트 101. ‘~하기’라는 몇 글자의 단어들을 대부분 실행하지 못해 훗날 2022년 12월 어느 날에 내가 땅을 탕탕 치며 후회하는 날이 올지라도, 당장 나는 몸이 4개쯤 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들로 버킷리스트를 그득그득 채웠다. 




2021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노는 동안 나는 우울함과 분노, 모든 낮고 어두운 감정들로 가득 찼고 재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소리 냈다. 나의 선택들로 인한 결과였지만 오롯하게 받아들이는 동안 내적으로 많은 충돌을 일으켰고 마음이 덜컥 고장 나 버렸다. 그때부터 내 일상은 블루 스크린으로 가득했다. 망가진 마음의 결과였다.




맨 처음에는 잠을 못 이뤘다. 새벽 2 - 3시가 되어도 잠이 쉬이 오지 않았고 심한 날에는 2 – 3일에 걸쳐 노루잠을 자기도 했다. 전원을 꺼두는 시간이 1/3 이하로 떨어지면서 무슨 일을 하든 내 효율은 60%도 채 발휘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든 꺼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다음엔 불안함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뒤처지는 기분에, 세상에 아무런 연고 없이 불현듯 태어난 사람이 된 것 같은 고독감에,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무기력함에 점점 더 불안했다. 검은 감정은 나를 마구 빨아들이기만 했다. 바다 위가 아닌 바닷속에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물 위에서 수영하고 휩쓸리고 부유하는데, 나만 물밑에서 사람들 발만 올려다보았다. 발버둥 치지만 나아가지도 혹은 위로 올라가지도 않고 그저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2021년을 보냈다.




이런 나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나만 병들어 가는 게 아니었다. 불쌍한 나의 남편. 세상 누구보다 긍정 요정인 남편의 얼굴에 학교 운동장 스탠드보다 더 큰 그늘이 생겼다. 동화 속 늙은 마녀가 생을 연명하기 위해 어린아이의 생기를 빨아먹는 것처럼 나는 그를 계속 갉아먹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함께 행복해지기로 해놓고 함께 불행해지는 것만 반복 또 반복했다.




더 이상 이럴 수는 없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때아니게 벌떡 외쳤다. 2021년 12월 연말. 그렇게 나는 시기적절하게 다짐했다. 생산적인 걸 해보자고. 무언가 만들어 내는 사람이 돼보자고 말이다. 하지만 모든 걸 다할 수는 없는 법. 고민했다. 돈과 지구력이 없기에 푼이 많이 들지 않고 장비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활동이어야 하며, 약간의 있어보이즘이 실현되면 좋겠다는 내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망해도 그다음이 있고 얼마든지 다른 걸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되도록이면 망하고 싶지 않았다. 새로 마음을 고쳐먹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릴까 봐. 그렇게 마음의 뜰채로 몇 번을 거르고 걸러 글쓰기가 최종 간택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후 하나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나는 글을 쓸 때 주제와 관계없이 자주 운다는 점이다. 글쓰기 초반에는 코끝이 시큰하다가 중반을 넘어서면 눈물샘의 수위가 높아지고 퇴고를 할 때 즈음에는 결국 젖은 행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도 줄줄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훔치며 글을 쓰고, 읽고, 퇴고하는 중이다.) 내 글이 시대의 걸작 같아 보이거나 감명을 받아 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졸작처럼 보여 남에게 내보이기 부끄럽다. 그저 글을 쓰는 동안 내 마음이 이랬구나 하는 걸 인지하고 다독이다 보니 자기 설움에 우는 것일 뿐. 글쓰기를 통해 나를 슬프고 아프게 했던 것들을 꾹꾹 눌러 담아 손끝에 적어 날려 보낸다. 혹여 미처 날아가지 못한 것들이 있을 새라 눈물로 다시 한번 남은 마음들을 씻어낸다.




그래서 오늘도 발행 기한에 맞춰 글을 썼다. 이번 주는 좀 덜 슬픈 나로 만들어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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