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너 정말 이게 답이라고 생각해?

신앙과 배움의 경계에 선 아들에게

“엄마, 하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셔서 3번이라고 했어.”


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답을 체크하면서 아들이 한 말이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답이라는 것을. 좀비에 대한 글을 보고 푸는 문제였는데 거기에 이웃이 왜 튀어나오겠는가.

그건 오답이라는 말을 하기에 앞서, ‘신앙을 일반 학문에 개입시키면 안 되는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한 이론이 내 안에서 정리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일부러 문제를 보지 않은 채 “아 그래?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풀어봐. 다 풀면 보자.”


얼핏, 학기 중 있었던 해프닝이 생각이 났다. 방과 후 부모참관수업 앞둔 전 주였는데, 아들을 기다리다가 마주친 한국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 오늘 단군에 대해 배웠는데 찬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거짓말이라고 예수님이 진짜라고 하면서요- 집에 가셔서 잘 좀 이야기 부탁드릴게요~”

헛웃음이 올라오면서 잘 이야기해 놓겠다고 수업에 방해드려서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드리면서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시절 사람들에게 단군신화가 생기게 된 연유, 네가 좋아하는 그리스로마신화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수업시간에 네 의견을 말하는 건 좋은 자세이지만 수업진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

다행히 그다음 주 참관수업 시간에 아들은 단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아이들 서너 명이 하나님이 맞다고, 단군은 뻥이라며 심지어 토라지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다행히 선생님께선 아이들의 성화에도 지혜롭게 대답해 주셨고 별 타격 없이 수업은 진행되었다. 그리고 저녁에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찬이에게 이야기 잘해주셨나 봐요- 오늘 또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안 하더라고요~” (방과 후 선생님께 전화까지 올 줄이야, 정말 놀랐었다!)

“아 네~ 저도 제가 이야기했다고 말 잘 들어줄 줄 몰랐는데, 다행히 납득이 되었나 봐요~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면서 이런 경우가 잦다면서, 예전에는 신앙심 깊은 학부모님이 (이 워딩 그대로 쓰셨다…) 단군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내 얼굴이 달아오르던 순간… 아이가 자라면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런 대처를 하는지 내가 다 혼란스러워지던 순간이었다.


다시 좀비 문제로 돌아와서, 채점을 하다가 아들의 눈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 정말 이게 답이라고 생각해? 네가 하나님이 알려주신 그 명령을 지키려고 한 마음 존중해. 맞아 이웃을 사랑해야지, 근데 정말 이 문제의 답은 이거라고 생각해?”

눈알을 도르륵 도르륵 굴리다가 아들이 말한다.

“아니…”

그렇다, 아들은 정말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3번이라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답을 모르겠어서 찍으면서 핑계를 댄 것이다. 나는 뒷골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무언가 배울 땐 말이야. 그냥 그 이야기 자체만 봐야 해. 네 마음과 머리에 먼저 있는 가치관이 아니라 이 책, 이 문제만 봐야 해. 나중에 과학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야. 네가 믿고 있고 알고 있는 무언가와 상반되는 내용을 배우게 될 거야. 헷갈릴 수 있어. 그래도 집중하고 그냥 그 상황에서 배우는 것만 봐. 그리고 힘들면 엄마 아빠랑 대화하자.”


그리고 다시 적은 답도 틀리긴 했다. 역시나, 몰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참 재미있는 기회로, 신앙과 학문의 경계선을 짚어봤던 오늘.

무지의 핑계로 신앙을 이유 삼는 아이가 되지 않길, 신앙의 펜스로 깊이 있는 학문에 다가서지 못하는 아이도 되지 않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