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사람들은 호기심이 강하고, 유연하고, 끈기 있고, 독립적이고, 엄청난 모험 정신을 가지고 있고 놀이를 사랑한다. Creative people are curious, flexible, persistent, and independent with a tremendous spirit of adventure and a love of play.
아이들은 나무를 탄다거나 높은 곳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하여 어떤 놀이를 금지하면 아이들 모두가 곧이 곧대로 어른들을 따르지는 않는다. 아동은 놀이를 하면서 자기 자신과 주변 상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통제감과 자율감을 같이 키우게 된다. 어른들이 이미 짜놓은 상황을 넘어서 자신의 신체적 힘과 사회적 기술을 활용하여 외부 환경을 변화시키며 아이들은 유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유능감은 아이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한다. 놀이 속에서 새로운 상황을 창조할 때 동반되는 불확실성은 그 자체로 몸과 정신에 자극이 된다. 약간 위험해 보이는 나무를 타는 놀이는 짜릿하다. 그러나 짜릿함도 잠시고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하게 된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어린 것들은 새로운 위험을 찾아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한다. 인간은 위험에 대한 내적 보상 시스템이 매우 발달한 존재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것은 한 인간이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아이들만이 위험해 보이는 상황을 놀이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마음 속의 아이를 잃지 않은 어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고를 친다. 다 자란 동물들은 인간 어른처럼 위험한 짓을 찾아다니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지 않는다. 위험이란 이미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거부하고 좀 다른 방식을 선택했을 때 치를 댓가를 감수한다는 것인데 분명 인간은 이런 점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탁월한 보상 시스템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 주변을 보아도 위험을 무릅쓴 선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들이나 그런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위험에 대한 사회적 보상 시스템은 의외로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묘하게도 현대사회는 창의력을 칭송하는 동시에 위험을 고도로 관리한다. 이러한 역설은 이면에 두 가지를 반영한다. 현대의 인류사회가 이미 고도로 세계화·조직화되면서 작은 위험에도 취약해졌다는 점,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창의력을 발휘될 여지가 급속도로 사라져 간다. 휴대폰을 예로 들어 보자. 휴대폰을 개발하는 한 회사의 최소인원은 삼천 명 정도라고 한다. 삼천 명 이상의 조직화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와 관리직 사무직이 함께 일하지 않으면 이 손바닥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기계를 제대로 만들 수 없다. 그렇다고 한 회사에서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 전체를 다 만들지 못한다. 액정은 액정대로 메모리는 메모리대로 핵심 칩은 그 나름의 전문회사가 있고 그 회사들의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을 들어 애플의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의 창의력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하였다. 휴대폰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은 수 만명이다. 그 중에 한 두명이 창의적인 천재라고 해서 획기적인 뭔가가 나오는 구조가 아니다. 반대로 휴대폰의 핵심부품 몇 가지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기업을 떠올려 보자. 대표적인 회사로 퀼컴을 들 수 있겠다. 퀼컴의 칩을 생산하거나 납품하는 공장이 갑작스런 쓰나미나 화재 등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가정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지금처럼 세계화 전문화 조직화가 진행되기 전에는 한 거대기업의 문제가 전세계적 문제가 될 가능성은 극히 낮았지만 이제는 그만큼의 위험이 잠복된 사회를 우리는 살아간다. 관리 가능하여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창의력을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런 인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부문들에서 제3세계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점에 관해 서구의 학자들 중 일부는 서구의 선진 교육 시스템을 통해 길러낼 수 있는 인재들이 그런 수준이 될 수 는 없으며 어른들이 끊임없이 개입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이들만의 힘으로 뭔가를 생산하고 지속하는 것이 가능한 느슨하고 여지가 많은 아이들만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한다. 위험은 절대 감수하지 못하게 하면서 창의력은 알아서 기르라고 학생들을 닥달하는 한국의 학교와 사회는 과연 언제부터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엄청난 창의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