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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수 Feb 25. 2022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졸업 일기, 1월과 2월 편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게 누군가에게 끝도 없이 못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으니까요. 


 졸업 이후의 미래가 너무 막연해서인지, 남들은 앞날을 계획하기 바쁜데 저는 뒤를 돌아보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까 보다 어쩌다 이 일을 선택했을까를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전자는 아직 답을 모르고 후자는 조금이나마 답을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 시간이 저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거 같았습니다. 하루가 끝나고 잠이 들기 전 영화를 보던 시간이 고등학교 시절 큰 안식처였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되고 싶은 것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약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잠이 들기 전 영화를 보는 게 괴롭고, 유튜브 콘텐츠는 괜히 또 싫고, 가끔 보는 해외 축구 경기에 일희일비하는 날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밤에 또 혼자 술을 마시고 다음날엔 위장약과 각종 비타민을 먹어 겨우 오후를 살아낼 최소한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네, 저는 그런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른이라는 단어가 퍽 웃긴 나이가 되었습니다. 


  몇 주 전의 일입니다. 촬영을 마치고 장비를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습니다. 서울의 도로는 어디를 통과하든 혼자인 법이 없습니다. 그게 새벽이라도 그렇습니다. 사연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창밖으로 공유하지도 못한 채, 제각각의 속도로 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혼자도, 혼자가 아니지도 않은 도로 위 차 안이 문득 무서워졌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봐 그랬을까요.


  수료를 했습니다. 졸업은 아직 남았고요. 이제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학생이라고 답하기 참 애매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냥 프리랜서라고 답을 합니다. 그게 꼭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근데 졸업을 한다고 저의 대답이 바뀔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평생을 학생의 신분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경계선에 놓여 있습니다. 어쩌면 그 경계선은 무한한 연장선으로 이어질 것만 같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기나긴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며 걸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년의 학부를 마친 기분은 마치 바다를 보러 가서 빈 조개껍데기 하나 들고 온 거 같습니다. 바다를 가지고 올 수는 없으니까요. 누군가는 빈 껍데기를 보고 '겨우 그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바다를 보고 왔다는 최선의 증표인데 말이죠. 졸업 영화도 그렇게 고르고 고른 빈 조개껍데기 중 하나겠죠.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맞을까 봐 무섭고 또 어렵습니다.


 1월과 2월은 멀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건 영화를 붙잡는 제 나름의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매달 남기려고 다짐했던 이 글도 결국 2월의 끝자락에 합쳐서 쓰게 되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 동안 제 나름의 졸업의 기록을 남겨보고자 합니다. 


 졸업을 해야겠습니다. 거창한 목표나 계획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일들의 끝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전부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글을 딱 그런 마음으로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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