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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수 Feb 25. 2023

익숙함을 성장이라 부를 수 있길

2월, 이소라의 노래와 메리 올리버의 시

오늘 오전엔 운동을 갔다가 오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는 일을 하고, 자기 전에 영화를 보려다 포기하고 술을 마셨습니다.

내일은 어제 못 본 영화를 보고 다시 글을 쓰겠지요.


작년 이맘때를 돌아보면 그때도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습니다. 달라진 상황이 있다면 저는 이제 졸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안부와 근황보다는 계획을 물어보곤 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걸 하고자 하는지, 어떻게 살고 또 먹을 수 있을지. 주고받는 의문문들은 종종 그리고 역시나 '왜' 혹은 '어쩌다'로 귀결됩니다.


"왜 하필 이 일을 하기로 한 거야?"

대학을 처음 입학했을 때만 유효할 줄 알았던 질문이 졸업 이후에도 여전히 반복됩니다.

그리고 상투적인 대답을 준비하고 말합니다.


"외로워서 그랬어."

"그러면 지금은 덜 외로워?"

"지독하게 외롭지."

"그렇다면 왜 계속 이걸 하는 거야?"


'이제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안 남아서'라는 대답이 문득 생각났고, 그 말을 오래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이 대답이 정확한 답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조금 더 정확한 답은 '괜찮아졌다'는 것일 겁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외로운 게 안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외로워도 무언가 괜찮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그 느낌이 익숙함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와 지금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이 일상이 작년보다 더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나는 일의 익숙함 속에서 괜찮음을 발견합니다.


요즘엔 예전에 본 영화와 글을 다시 꺼내 보곤 합니다. 예전에는 왜 좋다고 말하는지 몰랐던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다시 본 몇몇 작품들을 꽤 오래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처음과 두 번째 사이의 공백 동안 제가 무언가를 더 깨달아서는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문장에, 또 어떤 글에 더 익숙해져서 일 것입니다.


그렇게 이소라의 노랫말이 예전보다 이해가 되고,

메리 올리버의 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야모토 테루가 소설의 쓴  '그럭저럭'이라는 단어는 이제 알 거 같습니다.

익숙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익숙함을 성장이라 부를 수 있길 바라봅니다.

무언가를 더 알게 된 게 아니라 그저 조금 더 익숙해진 것이 전부일지라도요.


물론 이 익숙함에 너무 지지는 않아야겠습니다.

세상 모든 시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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