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박준의 시와 김나영 - <어른이 된다는 게>
처음으로 소설을 읽는 것에 재미를 붙였던 시기엔 그 안에 문장들을 쉽게 긍정했습니다. 그 시선이 품은 따듯함을 믿었습니다. 여전히 그 믿음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문득 나에게 고집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상을 받은 한 유명 외국 작가의 소설을 읽던 중이었습니다. 어떤 문장을 만났는데, 그 문장은 이 책의 주제이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문장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취향, 가치관, 신념 그리고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묶으면 아주 두꺼운 고집이 될 거 같습니다.
아주 질긴 가죽으로 만든 방수포처럼 물 한 방울이 스며들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변하지 않는 것들을 증오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의 제가 이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어떤 모습들과 닮아가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말을 한참 미화해서 말해본다면 어른이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박준 -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에서
받아쓰길 잘하는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니게 되고
키는 한참 더 자랐는데
자랑할 일은 사라져가네
김나영 - <어른이 된다는 게>에서
고집이 생겼다는 건 자랑할 일이 될 수 있을까요.
고집을 꺾었다는 게 어쩌면 더 자랑이 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도, 받아쓰길 잘하는 것도 이제는 변하지 않는 것들일 겁니다.
폐가 아픈 일과 키가 자란 일은 이미 완료된 상태입니다.
사람들은 건강한 체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곤 합니다. 키는 더 이상 자랄 수 있지만 몸의 근육과 지방은 변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건강하게 변한 몸은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오랜 시간 집에서 머물다가 나가는 것도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자랑이라는 게 엄청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변화를 무한히 긍정하겠다는 말은 위험하겠습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조화되어 아름다움을 주는 풍경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그 어떤 대상조차도 미시의 세계에서 본다면 무언가 끊임없이, 느리고 천천히 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히 가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박준 시인의 글 속에도 변화의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영원한 슬픔은 없다는 말이 멋쩍긴 하지만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여겨졌던 무언가가 변하는 건 분명 멋진 일입니다. 어느 이야기 속 소년과 소녀의 성장이 그러하듯이요.
요즘 들어 변화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날씨도, 사람도, 관계도,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도.
못하겠다는 말이 변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릴 거 같습니다.
다가올 계절에 자랑할 일이 생겨보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