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허수경 - <불취불귀>와 나의 마지막 봄타령
불행을 동력으로 글을 쓰곤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법이었고, 종종 정답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5월의 글이 늦었습니다. 불행의 동력이라는 의미에서는 꽤 괜찮은 5월을 보냈다는 말이겠네요.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다는 말은 영원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변명이니까요.
행운 총량의 법칙을 좋아합니다. 인생에서는 결국 쓸 수 있는 행운의 양이 정해졌다는 법칙입니다. 관점에 따라 무한히 긍정적이기도 하고 한없이 절망적이기도 합니다. 힘든 일이 찾아왔을 때 그다음 좋은 일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좋은 일 이후 이어지게 될 막연한 불행을 일찍이부터 두려워하게 됩니다.
인생에서 마지막 목표를 이루고 나면, 남은 것은 아플 일뿐일까요.
5월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저는 하나의 계획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을 생각합니다.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다기보다는 다가올 막연한 불행을 대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목표가 달성된 후(그게 실패든 성공이든) 남는 게 아플 일이 것만 같았습니다. 아픈 게 싫어서 지금의 고통에 적당히 안도를 느끼는 것이죠.
제가 쓰는 이야기는 주로 머릿속의 두 가지 갈래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는 헛된 상상이고, 다른 하나는 못된 생각들입니다. 헛된 상상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못된 생각들은 이야기의 주제가 됩니다. 헛된 상상력은 사람들이 믿지 않고, 때로는 좋아하지도 않은 어떤 것들입니다. 그리고 못된 생각들은 말 그대로 정말 못된 생각들입니다.
김영랑 시인의 표현을 빌려 온다면, 저도 마음에 독을 품고 산지가 오래입니다. 내 안에 폭력과 분노에 저항하는 과정이 저의 생각으로 이어지고 행동이 되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와 싸우다가 조금 멀리 왔습니다. 그렇게 제가 쓰는 글이 내면이 품은 독이자 무딘 칼이라 여겼습니다. 5월의 깨달음은 이게 독이면서 동시에 해독제라는 것이었고요.
헛되고 못된 것들이 이야기에서 용서가 되었습니다. 자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꽤나 엉망진창이었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 헛되고 못된 무언가를 원망스러워하지는 않아야겠습니다.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허수경 - 불귀출귀 전문
모든 것은 결국 마음의 문제이고, 마음의 일이겠습니다. 그게 헛된 상상이든 못된 생각이든 사실은 괜찮은 거였습니다. 언제나 괜찮지 않은 것은 마음이니까요. 그렇기에 더욱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하는 최후의 하나가 마음이겠네요.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는 허수경 시인의 말이 이야기의 동력이 되어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말버릇처럼 자주 내뱉고는 했습니다. 진심이 담긴 일에는 마음을 다하라고 표현해야겠네요. 다짐은 계획을 닮아서 이렇듯 자주 수정되곤 합니다.
하나,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가 바뀝니다.
이렇게 여름을 시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