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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공장장 Aug 31. 2023

뮤지컬 사칠 6

공연이 시작되었다


1. 첫 공

'선빵'은 정말 중요하다. 때리든, 맞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선빵'이다. 첫 공연 날은 그랬다.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자잘한 실수도 많았고 어쩐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다. 츤츤님과 인자강님이 첫 출동을 했다. 나머지 배우들도 뒤쪽 좌석에 앉아 공연을 보았다. '선빵'이란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시뮬레이션한 모든 것을 관객들에게 처음 보여주는 자리. 그와 더불어 배우들이나 기획팀, 그리고 연출과 극작가에게는 다음 회차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미처 확인하지 못 한 부분들. 그리고 이후 언급하겠지만 바뀐 대사들까지도. 정말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극장 앞에 무지개가 떴다




공연 전 날 일. 며칠 째 잠을 못 잤다. 머리가 너무 아프더라. 프리뷰 기간 동안 공연은 조금씩 수정될 것이다. 모두가 각오했다. 창작 초연극이니만큼 그 부분은 감안하고 시작했다. 셋업, 테크 리허설, 드레스 리허설... 정신없었지만 일은 순차적으로 진행이 됐다. 그런데 문득, 리허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A씬을 '이러저러하게' 수정하면 어떨까? 장면이 훨씬 좋아질 거 같은데. 근데 그러자면 대사를 추가해야만 한다.


에이,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공연이 내일이다. 천천히 가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프리뷰 기간 동안 조금씩 고쳐 나가는 거다. 하지만 이내 기획님에서 나와 같은 의견이 나왔다. (기획은 '팀'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1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드래곤볼로 치면 퓨전 같은 느낌? 그래서 앞으로는 기획님이라고 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당황스러운 건 연출님과 배우님들이다. 동선이나 비즈니스, 조명 정도는 바꾸거나 뺄 순 있지만 대사가 추가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것도 공연 전 날! 특히 대사는 정원이들에게만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니다, 의견으로만 끝내자. 프리뷰 기간이다. 조금씩 바꾸면 된다. 서두르지 말자. 준비한 그대로 올리자.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이쪽 계통 일을 하면서 공연 전 날, 대사를 추가한 적이 있던가? 아아, 딱 한 번 있었구나. 그땐 내가 극작이자 연출이었다. 그때는 내가 리더였기 때문에 온전히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진행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만의 책임이 아니다. 연출님의 책임도 따른다. 프로덕션이 크기 때문에 각 포지션마다 부담감과 새로운 책임들이 생긴다. 잠을 못 자서 잠시 어떻게 됐나 보다. 연출님과 배우님들, 그리고 스텝들에게 도움은커녕 어마어마한 부담을 주려고 하다니. 그리고 내일 첫 공을 올리는 첫 페어들에게는 정말 못 할 짓이다. 그래, 그래. 내가 잠시 어떻게 된 거다. 의견이었을 뿐이다. 없던 이야기로 하자. 그래, 그렇게 하는 거다. 혼잣말을 하며, 나 자신을 진정시킨다. 그러는 사이, 화장실로 누가 들어왔다. 내일 선빵팀, 츤츤 정원이다.


작가님.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찢어버리겠습니다.


순간, 울컥했다. 대사가 추가되면 가장 부담되는 건 정원이다. 그리고 그 정원이들 중에서 첫 공을 올릴 츤츤님이다. 그런데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받았다. 화장실을 나와 다시 극장으로 간다. 연출님이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게 가시죠.


사실은 연출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자신 또한 결심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내일 첫 공부터 수정해서 보여 줄지, 아니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고쳐나갈지. 연출님은 전체적인 벨런스를 생각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다른 정원이들은 어떤 의견일까? 객석, 정파의 무림 고수의 이름을 지닌 남자, 그가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단 한 명의 정원이라도 난색을 표하면 난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얼마만큼 부담이 되는지, 각자 첫 공을 올려야 하는 배우들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정말로, 나는, 그러니까, 난...


... 무림의 고수님이 날 보고 씨익, 웃는다.  특유의 젠틀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며.


각오했구나. 그리고 괜찮다고 오히려 내게 미소를 짓는구나.


그러면 A타입 워리어님은?


... 이미 기획님과 무대를 바라보며 바뀐 연기를 어떻게 할지 이야기 중이다;;; 빠르구나. 진짜 A타입이네.


파이팅 콜 출처/네오


츤츤 정원이 정말 비장? 하다. 연출님이 '찢어달라'라는 말은 바로 앞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지직. 지지직. 정전기를 조심해. 사육?

사칠!!!




사실, 나는 공연을 잘 못 보는 편이다. 이건 영화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자리에 앉자마자 특유의 압박감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와 비슷한 것이다.  의무소방원시절, 해안가 교통사고 현장에 투입된 적이 있었다. 덤프트럭과 일반 차량이 부딪친 큰 교통사고였다. 길게 말할 순 없겠지만, 그곳에서 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았다. 누군가 '경계의 안쪽'에서 '경계의 밖 어딘가'로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분은 떠나는 와중에도 본인 딸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일 이후로 협소한 공간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타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나한테 힘들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지만, 난 차가 없다. 운전면허증도 없다. 그런 심적 상태 때문에 난 지금까지 '내 모든 공연들'을 오퍼석, 혹은 자리 여유가 있는 공간에서 봤다. 그나마 그쪽에 있으면 부담이 덜해서. 하지만 사칠은 객석에서 보기로 했다. 모두가 의기투합하고 배려하며 만들어가고 있는 공연이다. 나 또한 피할 수 없다. 집중을 해서 봐야만 한다. 뭔가 힘을 보태고 싶다. 나의 아픈 기억이 일부 무대화되어 있지만, 꼭 객석에서 봐야만 한다.  


객석에서 보겠습니다!

...어차피 객석에서 보셔야 해요;;;;;  (작가 자리가 객석임)오퍼석 자리도 없어요.


첫 공이 끝난 후 츤츤님에게 연락이 왔다. A씬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그리고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상황, 느낌은 어땠는지. 직접 연기를 하고 관객을 만나보니 우리 사칠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것들을 말해주었다. 츤츤님의 아이디어는 기획님, 연출님에게도 전달되었는데, 꽤 좋은 개선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말까지 이 피드백을 토대로 이 씬을 보강할 생각이다. 나도  내가 본 것, 느낀 것을 츤츤님에게 이야기해 준다. 사적인 대화 내용을 전부 말할 순 없겠지만, 다만, 이것만큼은 올려도 괜찮을 거 같다.


츤츤님이 '우리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잘 만들어 봐요'라는 말.


만일, 처음 취지대로 천천히 보강하기로 했다면, 그 씬은 주말까지 개선되지 않았거나 아주 천천히 고쳤을 것이다. 선빵이다. 선빵은 늘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 츤츤님과 인자강님이 총대를 메고 나선 일이다. 적극적으로 부딪치고 해결하려고 했다. 츤츤님,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묵묵히 웃으며 따라주는 인자강님한테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2. 둘째 날.

전 날 보다 안정화되었다. 산만한 분위기도 사라졌다. 나는 연출님께 내가 공황장애를 비롯한 것들 앓고 있기 때문에 '공기호흡기 경고음 소리'가 길면 곤란하다고 했다. 아마, 그건 관객도 그럴 거라고.  연출님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미 소리의 길이와 큐를 정리하셨다고 한다. 어제 페어인 인자강님이 일찍 와서 리허설을 보고 있다. 그래, 어제는 정말 산만했으니까. 자신의 연기를 다시 점검하고, 또 어제 무대에서 느낀 것들을 배우들에게 공유해주려고 하나 보다. 특히 같은 이준이에게.


이준이의 첫 출동씬. '소년 이준'이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연습 초기만 해도 안무하냐, 파워레인저냐, 막 놀렸었는데...


이게 픽스가 되었다!!!

두둥!


그리고 소년 이준은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따로 디렉팅이 된 것도 아닌데 나머지 이준이들도 퍼포먼스 등장씬으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각자 저마다 안무? 파워레인저?를 준비했다.


그래, 첫 출동이야!!

소년 이준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문득 사칠 팀이 연습실에 있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날도 한창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식사하러 나간 사이에 소년 이준만 연습실에 남아 있었다. 배우들이 같이 가자고 해도 한사코 괜찮다고 한다. 나는 왜 식사를 안 하냐고 물어보았다. 과일을 준비했단다. 공연날까지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을 해서 소방관에 가까운 몸을 만들고 싶다고.


...그리고 소년 이준이 그러더라. 나 정말 잘 해내고 싶다고.


물론 '소년 이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원이들, 이준이들마다 이런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모두가 그렇겠지. 모든 배우님들이 다 잘 해내고 싶겠지. 그리고 스텝님들도, 연출님도, 기획님도, 그리고 나 또한 그렇다. 정말 잘 해내고 싶다. 이 마음은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는 조명감독님이 웃으면서 말한다. 일반적이긴 이야기이긴 한데, 저는 작가님이 이렇게 자주 나오는 공연은 처음 보네요. 나도 같이 웃는다. 그러고 보니 '작가'였을 때 이렇게 자주 나온 공연이 있었나? 단언하건대 없었다.


에... 이게 작가 업무가 아닌 거 같긴 하지만, 배우들 호스 전개도 가르쳐야 하고요. 또 알아야 할 일 중에 '쓰고 남은 호스'는 솔로 잘 닦아야 하거든요. 물을 빼고 건조대에 이렇게, 이렇게 걸어놔야 해요. 의무소방원 업무를 가르쳐줘야 하잖아요. 그리고 방화복 입는 법이랑 화재 현장 나갔을 때 상황도 알려줘야 해요. 이게 영화나 드라마랑 많이 다르거든요.


... 화재 현장에 들어간다. 정말 깜깜하다. 극장의 암전보다 더욱 깜깜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119 상황실에서는 핫라인을 통해 한국전력공사 상황실에 연락을 취한다. 한전상황실에서는 연락을 받는 즉시 화재지역 일대의 전력을 차단한다. 소방관들이 활동 도중 감전의 우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 깜깜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손을 길게 뻗고 벽을 짚는 거야...


우선 벽면을 찾아야 한다. 벽을 짚으며 등을 기댄다. 이제 방향을 잃을 염려는 없다. 벽은 이어져 있으니까. 이렇게 소방관들은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착용한 채 수색을 시작한다. 지하로 내려간다. 이제 그들은 엎드리며 간다. 가연성 가스는 공기보다 가볍다. 이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 가연성 가스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엎드린다. 엎드린 채로 기어간다. 가연성 가스는 천장 쪽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보다 낮은 자세로 수색을 시작한다. 이때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혹시라도 가연성 가스가 있다면, 작은 움직임, 정전기에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이가 그렇게 강조하는 말.

가연성 가스는 공기보다 가벼워...이하 중략

나 또한 의무소방원 시절부터 중앙소방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


무림정원이와 소년이준이 나선다 출처/네오


이야기가 점프? 된 느낌이 있다. 사실, 무림의 고수님과, 그와 비슷한 느낌을 풍긴? 직할 파출소의 어떤 반장님 일화를 이야기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 이야기를 쓰고 보니까, 이 이야기를 스킵해 버렸네;;;;


그분은 정말 젠틀했었다. 정말 웃기면 박수를 치는 것까지 지금의 무림정원과 많이 닮았었다. 굉장히 친절했고 내가 실수를 하면 잘 다독이며 위로해 주셨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있잖아, 그건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권 씨 성을 가진 반장님이었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분은 굉장한 멀티플레이였다. 내가 수방으로 진급한 다음에 외곽 파출소에서 권반장님을 다시 만났다. (이전까지 난 상황실에서 근무했었다) 직할파출소에서는 경방 일만 하셨던 거 같았는데, 외곽에서는 응급구조사 역할도 하시네?


진짜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내 솔플 이야기들이라, (웃음)


여하튼, 무림고수 정원이를 보고 있으면 권반장님이 생각난다.

사실은 '전설의 일등경방'이었던 권 반장님 말이다.


아차차, 이 이야기도 있다. 내가 의무소방원 시절에 말이야. 기수가 꼬여서 상방(상병) 때까지 후임이 없었다. 다른 소방서에 있는 동기들은 다 후임이 있었는데 나만 없었다 이 말이지. 마침내 후임이 들어온 날, 아니 아니, 오늘은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 행동요령'에 대해서도 말하려고 했었는데,


... 여기까지 하자. 정말로 내 솔플 기록들이라.


얼른 극장으로 가야 한다.

오늘은 A타입 워리어님과 모찌님이 출동하는 날이다.


때문에 '엘리베이터 행동요령'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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