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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현 Jan 30. 2018

문학 추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문학 추천 ) 가끔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면.

필자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책은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의 이방인 L'Etranger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기에 구연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려고 하기에 이방인만큼은 결단코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니 독자의 기호에 맞춰 읽기를 희구한다. 필자는 김 화영 씨가 번역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번 째 권을 읽었다. 이방인은 김 화영 옮긴이가 말한 것처럼 출판 된 이후로 *본래의 젊음을 조금도 잃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화영 교수가 옮긴 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작품은 지인들에게 문학작품을 추천 받을 때마다 언제나 언급하는 작가, 작품 중에 하나다. 다른 작품으로는 헤르만 헤세, 다자이 오사무, 토마스 만, 윌리엄 골딩, 레프 톨스토이, 존 스타인벡 등등을 들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작가 및 국문학,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학 작품도 차차 소개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부는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청년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전보로 받은 시점으로부터 시작되어 해변에서 아랍인을 살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2부는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 받는 시점으로부터 그의 형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시간까지를 그리고 있다. **1부가 죄 없는 삶의 세계를 담고 있다면 2부는 죄를 저질러 버린 뒤의 세계를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병행해서 말하자면 1부는 서민적인 세계인 반면 2부는 재판과 수사학의 세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차원의 해석에만 국한해 살펴본다면 독자는 이방인을 ***사실주의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 해석은 저마다의 몫일 것이다.     



이방인의 시작은 청년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을 전보로 받은 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서술하는 장면에서나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뫼르소는 간결하고 건조한 문어체로 말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죽음을 그다지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자관계가 나빴을 거라고 추측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어떠한 원한도 없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도 뫼르소는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언행들이 조문객들에게는 다소 의아하다. 가족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슬퍼하는 내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가 냉소적인 사람으로 비춰졌으리라.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애도했지만 타인에게는 그러한 행동이 애도로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뫼르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한다. 회사 동로였던 마리와 영화도 보고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이웃을 멀리하던 그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이러한 면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이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란 아무래도 짙은 어둠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타인에게는 그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비춰지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건조한 말투로 예사롭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때부터 그는 타인으로부터 위험한 대상으로 낙인 되고 격리의 대상으로 비춰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이 원하는 대답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이가 되어 버린다.

작가는 시종일관 뫼르소의 내면을 과장하지 않는다. 감정을 더 보태지 않으면서도 이전의 자신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은은하게 표현한다. 뫼르소가 조금씩 아주 천천히 변해가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독자를 뫼르소에 동화시킨다. 

타인을 살해한 행위는 결단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우발적 살해였다면 그의 죄 값은 어쩌면 좋은 방향으로 정상참작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주변인들에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심지어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관습과 규칙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에게 일깨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단면적인 모습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다수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타인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멸시받는 이들을 구원하려고 함은 아니었을까? 도식화된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길 원한다면 이방인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 이방인을 옮긴 김 화영 옮긴이의 말.

** 이방인 논문을 적은 로제 키요의 말.

*** 현 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예로 들 수 있음.     

추신 : 위의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얻었다. 양해를 구하지 않고 올렸는데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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