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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Aug 16. 2018

끝까지 감정이입 못한 주인공은
니가 처음이야

장강명, <표백>

며칠 전, 장강명 작가의 르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장강명'이라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도서관에서 충동적으로 그의 초기 소설인 <표백>을 빌려다 보았습니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세연은 "이미 민주주의라든가 자본주의 정착, 근대 체제로의 편입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과업들이 달성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20대는 평생 시시한 목표를 쫓으며 살 수밖에 없을 것"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동시에 세연은 "시시한 일을 추구하면 사람의 값어치도 낮아지기 때문에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이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녀는 자살을 통해 위대한 일을 실현하고자 했고, 실제로 자살을 합니다. 


보통은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게 과할 정도로 감정이입을 하는데, <표백>의 주인공인 세연에게는 책을 덮는 순간까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도 세연의 생각과 자살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세연은 인류의 중요한 역사적 과업들이 모두 달성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별다른 문제점이 없어서 더이상 바꿀 필요 없는 최선의 정치경제 체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정치 시스템이 아닙니다. 지난 겨울,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요? 또한 자본주의도 완벽한 경제 시스템이 아닙니다. 빈부격차는 자본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입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앞으로 꾸준한 개선이 필요한 정치경제 시스템입니다.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개혁하는 작업은 지금의 20대가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20대에게도 지난 세대처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과 같은 '위대한 일'을 하게 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저는 세연이 그 순간을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이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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