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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Dec 02. 2022

환상의 인테리어 공사  1

시작


삑삑삑.


번호키 누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떠 시계를 본다. 새벽 2시. 아이를 재우면서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누라’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불을 부둥켜안고 못 들은 척하려 했는데 더 다급한 소리로 부른다. ‘지혜야’ 조금 더 버텼다간 아이를 깨울 거 같아 침대에서 나왔다.



그가 돌아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그가 돌아왔다.

뭘 어떻게 한 건지 검정색 액체가 가슴팍에서부터 흘러 옷과 신발엔 검은 물이 찐득하니 묻어 있었다. 꼴이 가관이다. 허연 가루를 뒤집어 쓴 얼굴에도 검은 물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땀과 범벅이 된 하얀 가루와 그 위에 흘러내린 검은 물. 단 한마디로 말할 수 있었다.


“뭘 했길래 상거지 꼴이고?”


갱도에서 석탄을 캐다 왔다고 해도 믿을 꼴이었다. 그 와중에 웃는다. 속에서 크고 뜨거운 것이 입 밖으로 나올랑말랑 했다. 저두 제 꼴이 우스운 걸 아는지 별 말이 없다.


“화장실까지 종이든 수건이든 버릴 것 좀 깔아줘.”


그가 움직일 때마다, 입 열 때마다 하얀 가루들이 한 줌 씩 떨어져 나왔다. 땀과 섞인 무거운 것들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머리카락 같은 곳에 붙어 있던 가벼운 것들은 공중으로 흩어졌다.


“이거 다 뭔 가룬데?”

“퍼티질하고 빠데했다.”


평생 내가 알 일 없었을 단어들을 묶어 말이라 뱉어 놓고 깔아 놓은 수건들을 밟으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러는 중에도 떨어지는 하얀 덩어리들에 인상은 절로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5월 말. 하고 있던 일을 정리하고 작은 교습소를 열 준비를 시작했다. 상가 건물의 인테리어를 맡길 업자를 찾았으나 다들 작은 평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는 터라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이 길었다.


“내가 목수랑 페인트공 따로 찾아 줄게. 니가 스케줄 짜서 인부들 사서 해.”


일년 반전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그렇게 하고 들어왔던 터라 신랑은 그때처럼 해보라며 권했다. 그 일년반전, 공사를 끝낸 집에 이사 들어오면서 나는 신랑에게 말했었다.


다시는 니랑 집 고치는 거 안 해!


그 기억을 갖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싫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은 전문가에게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집 공사를 신랑과 함께 한 건 마지막이라는 설득 때문이었다. 다시 집 고칠 일이 내게 있겠는가! 그랬는데 생겨버린 것이다. 그런 일이.


내가 한참을 어떤 업체와, 얼마를 들여 공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신랑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본인이 부를 목수와 페인트공의 연락처, 인건비, 재료비 등과 내가 받아온 적서들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최대 1천만원에서 최소 500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가격이었다. 일년  전에도 저기에 혹해서 OK했다가 끝없는 결정과 번복,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살벌한 전쟁으로  달을 보냈었다. 이번에는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너의 고생과 나의 고생이 가격으로 잡혀있지 않다고 반대했다.


“손에 쥔 것도 없으면서 그 정도 고생도 안할라고 했나?”


라며 나를 고생 모르고 큰 공주님쯤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이건 나의 발작 버튼 같은 거다.) 그 도발에 큼지막한 일은 전문가를 부르기로 몇 번의 다짐을 받고 신랑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대로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리가!



수도가 없는 가게에 수도를 끌어오는 일을 배관공에게 맡기는 것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벽과 천장 마감공사를 하기로 했던 목수팀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까지 딱 3일 걸렸다. 그 사이 신랑은 제2안을 다 준비해놓았다. 어디선가 에어컴프레셔, 원형톱, 비계 같은 것들이 실려왔다. 그렇게 약 10주간의 환/장/할/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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