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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Mar 01. 2024

아침엔 사원, 저녁엔 클럽

사원과 클럽이 내겐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은 저의 Steemit 계정 @bestella에서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더 가까이 나와 붙어 있고 싶었다. 이미 혼자였지만 머리에 정리가 안 되는 혼란이 있어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지럽고 번잡해서 깊이 내려가서 대화하고 싶었다.


미리 봐 둔 사원에 갔다,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여러 마을을 지나고 시장을 지나고, 폭포를 지나고, 빨래터를 지났다. 저 멀리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엔 역시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원이 있었다. 딱히 볼 것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고 관리도 잘 되어 있지 않은 사원,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둔 것 같은 사원.



사원 근처에는 내게서 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적당한 선에서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최대치를 통보했다. 그랬는데도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 내게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이들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요구하고 제안해서 날 피곤하게 했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그들을 판단하거나 재단하거나 발리 사람들 혹은 우붓 사람들 진짜 별로이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사원 옆 가장 큰 욕망이 모여드는 응집점이 생기는, 너무나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을 보는 게 재밌었다. 그저, 오늘은 혼자 있고 싶다. 


돌계단에 앉아 짧은 명상을 했다. 하늘로 통하는 듯한 문을 나서면 있는 건 마을이다. 사원 밑엔 반드시 마을이 있다. 사원을 세운 건 마을 사람들이다. 마을이 있기에 사원이 있다. 그러나 역시 사원이 있기에 마을이 있기도 하다. 왜 분리도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단 걸 과거엔 몰랐을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마을로 돌아왔다. 말이 통하지 않던 운전사와 중간 몇 번 재밌는 일이 발생해서 같이 웃을 땐 뜻밖의 소박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저녁엔 클럽을 갔다. 과거 클럽을 꽤 좋아했다. 클럽에 자주 간 건 아니지만, 클럽을 가는 날은 언제나 행복한 날이었고, 즐거운 일이 가득했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와하카에서 마법을 겪은 날에도 우연히 J언니와 핫한 클럽을 발견한 게 시작이었다. 우붓에서도 클럽에 가보고 싶었다.


풀문 의식을 찾다가 정작 찾은 건 앨리스였다. 2월 29일 4년에 한 번 열리는 특별한 파티가 원숭이 숲 근처 술집에서 열린다. 앨리스 인 원더랜드! 이건 운명이다. 토끼를 따라가자. 술집이름은 The Blue Door였다. 


앨리스 복장을 한 너무 귀여운 웨이트리스와 모자 장수 복장의 웃는 모습이 예쁜 청년들이 살갑게 반겨주었다. 오, 여기 느낌이 좋은데. 아직 한산한 술집에서 목테일 한 잔과 나초를 주문하고 라이브 밴드 노래를 들었다. 목소리가 너무 좋다. 그러다 Two of Us 노래가 나오는데 전율했다. 그 순간 느꼈다.


내게 클럽에 가는 행위와 사원에 가는 행위가 다르지 않구나. 둘 다 나를 만나고 느끼는 행위구나. 나는 명료해지기 위해서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 내게 한 발짝 걸어가기 위해서 일상의 공간을 떠나 그 두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평소와 다른 나의 감각을 관찰한다. 


사원엔 신에게 바치는 헌신과 감사를 표상한 누군가의 땀과 노력 무엇보다도 창조성이 담긴 예술품과 건축물 그리고 의식을 볼 수 있다. 그곳은 나를 지우고 신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나를 만나기 좋은 공간이다.


클럽엔 음악이 있다. 자신을 통로로 창조를 마음껏 터트리며 발산하는 불의 기운과 에너지가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도를 하듯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재능과 창조는 영혼의 영역이다. 자기 자신이 되어 자신을 놓고 표현하는 그 공간이 내겐 신성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한 없이 친숙하고 자유롭다.


그러니 사원에 가서 명상하고 기도하는 마음과 클럽에 가서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춤을 추는 마음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밤 10시 반, 클럽 문이 열렸는데도 사람들은 술만 마시고 춤을 추지 않았다. 춤추고 싶었다. 춤을 췄는데도 아무도 춤추지 않았다. 집에 가려고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친구 아리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니 왜 벌써 가냐며 자기가 함께 춤을 춰주겠다고 했다.


11시 30분 여느 다른 클럽과 다름없이 춤추는 이들이 많아졌고, 자정이 지나자 이젠 그곳 안에 모든 이가 춤을 췄다. 12시 30분 숙소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오늘은 너무 행복했고, 특히나 아리나 덕분에 재밌게 놀고 의미 있는 대화도 나눴다. 거기 가길 정말 잘했고 토끼를 따라간 것도 옳은 선택이었구나. 그럼에도 더 이상 클럽에 가지 않겠구나. 난 클럽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음악을 듣고 춤추는 게 좋았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음악과 춤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과 춤을 추는 그 시간이 좋았던 거구나. 현실에 쫓기듯 어두운 공간에 숨어들어 다른 이의 눈치를 보고 각자의 욕망을 채우고 자신을 놓아버리고 비밀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일탈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구나. 좀 더 어린 날의 난 그것조차 즐기고 가끔 재밌어했다. 


나는 이제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한 방울 먹지 않고 명상하듯 추는 춤이 이제 재밌네. 클럽에서 음악 듣는 것도 좋지만 사원 가서 나무 보고 하늘 보고 명상하는 걸 더 좋아하네. 



아, 영화 앨리스 여주인공 앨리스를 닮았던, 아리나의 해맑은 미소와 날 바라보던 눈빛 웃음소리, 꾸밈없이 열린 마음과 온기, 함께 추던 우스꽝스럽고 섹시하고 신나고 그루브 했던 댄스 타임은 잊지 못할 거다. 정말 즐거웠다. 고마워 아리나!! 남은 여행에도 행운이 가득하길! 


p.s.요가 명상 프로그램에서는 본질 대화가 불가능했는데 술집에서 본질대화했다...아리나와 나는 요가가 싫다는 데 입을 모았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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