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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 포굿

그래서 해피엔딩이야

by 스텔라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오즈의 세상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만든 이야기를 ‘진실’로 믿는 세계, 그리고 눈앞의 진실이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외면하지 않는 세계.


에메랄드 시티는 아름답고 밝고, 모두가 만족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빛은 오래된 거짓 위에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만이 진실이 되고, 오즈가 ‘위대한 마법사’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진실 위에 세워지지 않은 세계는 지속될 수 없다. 거짓을 버티기 위해 만들어진 또 다른 거짓과 불안이 그 세계를 서서히 부식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엘파바와 글린다가 쌍둥이처럼 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엔 정반대의 사람들 같지만, 둘은 마치 하나의 근원적인 리듬에서 갈라져 나온 두 파동에 가깝다.


둘의 꿈도 비슷하다. 글린다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고, 그 밝음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싶다. 엘파바 역시 오즈의 모든 존재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세계를 꿈꾼다. 방식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모든 이가 행복한 오즈’를 바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결핍을 품고 있다. 엘파바는 초록 피부 때문에 소외되고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랐다. 그 외로움은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었지만, 그 고독은 동시에 그녀를 뒤틀리고 주눅 들게 만들었다. 강하지만, 그 강함은 통제되지 못한 충동에 가까웠다. 반대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글린다 역시 절대 채울 수 없는 구멍을 지니고 있다. 마법 능력이 없다는 사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힘'을 갖지 못한 채 그녀는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역할을 붙잡고 살아왔다.


둘은 상보적인 리듬이다. 엘파바가 밤이라면 글린다는 낮이다. 엘파바가 혼돈이라면 글린다는 조화다. 엘파바가 균열이라면, 글린다는 안정이다. 홀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결핍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에게만 건넬 수 있는 것을 서로에게 건넨다.


내가 위키드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결국 두 사람이 진정한 힘으로 돌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진실’ ‘조화’라는 서로 다른 리듬이 만나 이루어낸 통합이다.


나는 1편이 엘파바의 각성, 즉 자신의 리듬을 온전히 허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힘은 언제나 자유에서 나온다. 자유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엘파바의 힘은 초록색 피부라는 원죄 같은 상징에서 태어났다. 그 녹색은 그녀가 세상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운명의 표지 었고, 동시에 진실을 보는 힘의 근원이었다. 외롭고 상처받았지만, 그 외로움 덕분에 그녀는 스스로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독은 그녀를 부정하기보다는 마침내 자신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게 했고, 그 덕분에 엘파바는 누구보다 똑바로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힘은 아직 분노에서 기원한 반쪽짜리 자유였다. 그녀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었고, 오즈가 자신의 피부를 고쳐줄 거라 기대했다. 그녀도 오즈의 세계에 속하고 싶었다. 글린다가 다가와 준 순간, 엘파바의 외로운 리듬에 처음으로 ‘따뜻한 진동’이 생겼다.


둘이 처음 진심으로 이어진 장면은 무도회다. 마법 수업을 꿈꾸던 글린다에게 엘파바가 그 꿈을 선물해 준 순간, 글린다는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깊은 결핍이 이해받는 감동을 느낀다. 그래서 엘파바의 우스꽝스러운 춤에 함께해 준다. 그 순간 둘은 비로소 하나의 리듬으로 연결된다.


둘은 관계를 쌓고 추억을 만들며 에메랄드 시티까지 함께 오즈를 보러 가게 된다.


꿈을 이루러 온 곳에서 마주한 불편한 진실. 오즈가 마법 능력 없는 사기꾼임이 드러나고, 동물들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엘파바는 거짓된 세계에 속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는 그 세상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그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녀는 진실을 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곧 ‘오즈라는 세계의 균열’을 의미한다. 엘파바의 리듬은 이 세계에 맞지 않았다. 의도와 상관없이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균열과 혼란을 불러왔다. 그래서 엘파바는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존재하는 한, 권력자들은 그녀를 악으로 이용해 거짓된 세계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엘파바가 사라져야 오즈의 오래된 거짓도 함께 붕괴한다. 그 세계가 무너져야 거짓이 아닌 진실 위에 새로운 리듬이 태어난다.


그녀는 글린다에게 그 권한을 건넨다. 엘파바가 할 수 없지만 글린다는 할 수 있는 일.


진실을 품은 글린다는 비로소 진정한 리더로 각성한다. 온 세상에 미소를 주던 공주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그녀는 오즈를 쫓아내고 마담 모리블을 가두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오즈를 만든다. 그 일은 엘파바만으로도, 글린다만으로도 이루어낼 수 없던 일이다.


엘파바는 진실로 글린다를 해방시키고, 글린다는 사랑으로 엘파바를 인간으로 만든다.


둘의 리듬이 서로에게 남겨준 흔적 덕분이다. 둘은 결핍으로 가득 찬 하나였고, 또 두 개의 파동이기도 했다. 함께할 순 없지만, 서로에게 남긴 변화는 영원하다. 세상이 보기에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둘은 서로를 통해 더 나아졌고, 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같은 세계에서 살 수 없지만 서로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하나. 둘의 리듬은 서로에게 영원히 남는다. 둘은 실패한 것도, 이별한 것도 아니라 완성된 리듬으로 각자의 세계를 조율하러 떠난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글린다의 바람대로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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