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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원 Apr 24. 2018

나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 소공녀

처음 소공녀라는 제목을 듣고 사극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영화. 순례길에서 만난 누나가 작업하셨다는 말에 무언가에 홀리듯 보게 된 영화. 내가 걸으면서 마음먹었던 내 목표들과 현실에 돌아와서 마주하는 차가운 벽들이 충돌하는 것들에 익숙해져 갈 때쯤. 그냥 이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내 모습이 기억나기를 바라며, 누나와 아무 고민 없이 웃었던 그 날들이 조금이나마 현실에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까 해며 보게 된 영화 소공녀. 위스키 한 잔, 담배, 그리고 남자 친구만 있으면 행복한 주인공 미소의 이야기.


*본 글은 영화 소공녀를 보고 작성한 리뷰 형식의 글이며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주인공 미소. 미소에게 행복이란 위스키 한 잔, 담배, 그리고 남자 친구 한솔. 남들이 보기엔 부족한 삶일지 모르지만. 하루 벌어 얻은 돈을 담배 한 갑, 위스키 한 잔, 집세에 나누어 쓰고 나면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를 맞이하는 미소. 어찌 보면 소박한 행복일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가진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위스키 한 잔,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 한솔. 미소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



살아가는 데에는 그 이상 그 이하도 필요 없는 미소에게 어느 날 담뱃값 인상이라는 불행이 찾아온다. 삶에는 늘 선택이 찾아온다. 내가 원하는 행복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늘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담배를 끊고, 술을 줄였겠지만 미소는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가치를 위해 과감히 집을 포기한다.



삶에는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변화와 선택이 찾아온다.



월세가 더 싼 집으로 이사하기 위한 보증금을 마련할 때까지 예전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들에게 한 명씩 찾아가 재워줄 것을 부탁하는 미소.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라는 대사와 함께 미소의 여행이 시작된다.


집이 없는게 아니라, 여행중인거야.


건강을 포기하고 회사일에 열중하는 베이스, 시댁살이를 하느라 자유를 잃어버린 키보드, 아내와의 이혼 위기에 처한 드럼, 오랫동안 총각신세를 면하지 못해 결혼하는 것이 부모님의 소원인 보컬, 부자 남편에게 시집을 간 기타. 어느 하나 이 시대에 흔하디 흔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그 모습들 속에서 미소는 다른 사람들이 선택하고 포기한 수많은 가치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훨씬 어른이며 미소가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미소에게 위로받고 미소의 삶에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현실적이며 어딘가 모르게 부조리한 그들의 모습보다도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은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임신을 하고 집을 정리하게 되어 미소에게 울먹이며 해고를 전하는 민지에게 밥은 먹었냐고 묻는 미소의 모습이다. 집 만 없는 미소와 집 만 가진 사람들. 행복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사람들 속에서 미소는 변하지 않고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개비를 찾는다.



극단적인 현실주의로만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집값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한 불편한 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보는 내내 이영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미소에 대한 안타까움과 존경심 두 개가 뒤엉켜 마음속에서 뒹굴었다. 영화를 보고 마음속에 남는 것이 그저 “서울 월세 너무 비싸네...” 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 하나만은 아니었으면  싶다. 그렇게 메마른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도 정말 그런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으니.



영화의 마지막에, 먹지 않으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약 마저 포기하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미소의 모습, 누구보다 행복하게 위스키를 마시고 일어나 어딘지 모를 들판 위에서 작은 텐트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미소. 남의 기준에 발맞추어 살면 내 행복을 모르게 된다지만, 남의 행복을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고 내 행복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미소처럼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아버리지 않고, 지켜나가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1분 1초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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