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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Mar 02. 2024

2024. 2. 28.

여덟 번째 ©Myeongjae Lee

KE1227.

20:25,  탑승구 10→8, 좌석 42A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42B 남성이 내 옆 가운데 자리에 앉자마자 

통로 좌석 42C 여성에게 "죄송한데, 자리 좀 바꿔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뭐가 좀 있어서요."라고 했다.

여성 승객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 남성 승객은 불안한 목소리로 "조금 있다 앉겠다."며 복도로 나갔다. 

자리를 '내어 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버거워서 그랬던 것 같다.

잠시 후 여성 승객은 아무 말 없이 내 옆자리로 한 칸 이동했고, 남자 승객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륙 직전,

   "고맙다는 말씀을 안 하시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공황장애가 와가지고요."


자리를 양보해 준 여성 승객의 말도, '고맙다' 말하는 것을 두 번이나 잊은 남자 승객의 심정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옆 자리 승객에게는 내가 대신 마음속으로 '고맙다, 착하다' 했고, 옆옆자리 승객에게도 내가 마음속으로 '잘 견뎌내실 거다, 괜찮으실 거다'라고 했다.


무탈히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습하고 비릿한, 그리웠던 제주의 공기가 나를 반겼다. 42B, 42C, 그리고 42A 나에게도 평안한 밤이 되기를. 


©Myeongjae Lee


다음 날 아침 일찍,

지난번 왔을 때 주문해 놓은 나의 첫 다초점렌즈안경을 찾아왔다.

사실, 2019년부터 노안 증세가 시작되었고, 의사나 검안사의 몇 차례 권유가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는 핑계로 미루고 또 미루어 왔다. 

최근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는 횟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간의 문제는 이미 아니었고 결심의 문제였다.

그런데, 안경을 쓰고 익숙해질 때까지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니, 아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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