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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자연스러운 삶을 위한 철학

by 김혜원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책을 세상에 내보내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저에게 주어진 역할은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해내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스승이 쓰고 제가 만든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제도 제 마음을 잘 모를 때마다 가장 먼저 펼쳐보는 글이기도 합니다.

많이 많이 사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1hAA5QsG9s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펼쳐보는 지도

『에티카』로 배우는 ‘자연스러운 삶’의 법칙


의지박약, 피해의식, 자기부정, 공허함, 중독... 마음이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수백 번 결심해도 의지는 생기지 않고, 간절히 바랐던 것을 이뤄도 가슴 한 켠이 허전하다. 이유 없이 누군가가 미워지고,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은 너무 빨리 식어 버린다. 불행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언가에 중독되어 소중한 것들을 잃는다. 희망을 품고 살아가려 해도, 잠들기 직전 밀려드는 불안은 피할 수 없다. 왜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왜 내 감정에 내가 휘둘릴까? 왜 내 삶은 답답하고 혼란스러울까?


이 책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이 왜 혼란스러워지는지 알기 쉽게 보여 준다. 『에티카』는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가 그린 ‘마음의 지도’다. 그는 정신과 신체, 욕망과 감정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기하학적 논증을 통해 밝혀내며, 우리가 혼란과 부자유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오늘날까지도 『에티카』는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꿰뚫어 본, 철학사의 걸작으로 꼽힌다.


오랜 시간 ‘신도림 스피노자’를 자처하며 대중에게 철학을 알려 온 저자는 이 위대한 고전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불러온다. 그는 질투심, 후회, 자기비하 등 우리가 흔히 겪는 마음의 혼란에 스피노자의 철학을 비춘다. 그의 해설과 함께 스피노자의 ‘마음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예컨대, 끌리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호감’인지 ‘욕정’인지 ‘야심’인지 ‘사랑’인지 구분하게 되고, 섹스 뒤 찾아오는 공허함이나 잠들기 전 엄습하는 불안의 실체도 파악하게 된다. 더 나아가 중독, 피해의식, 자기부정처럼 삶을 옭아매는 마음의 굴레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또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마음을 알게 되는 만큼, 삶은 가볍고 자연스러워진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지구가 세상의 전부라 믿었던 사람이 지구의 존재가 우주의 먼지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과도 같다.” 한 독자의 말처럼, 스피노자의 사유는 지금도 우리의 세계관을 뒤흔들 만큼 혁명적이다. 그는 치밀한 논리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생각과 믿음을 단숨에 전복시킨다. 그러나 그 전복의 과정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보다 오히려 단단하게 일으켜 세운다. 그의 빈틈없는 논리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바다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듯, 스피노자의 사유 앞에서 우리는 평온한 위안을 얻게 된다. 스피노자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스피노자는 누구인가?

- 감정, 욕망, 몸, 자연의 철학자


“철학자들의 왕, 철학자들의 그리스도.” - 질 들뢰즈

“모든 철학자는 두 가지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의 것이다.” - 앙리 베르그송


스피노자는 근대 속에서 근대를 뛰어넘은 철학자다. 그는 모두가 신을 믿던 시대에 유대-기독교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자연) 자체가 곧 신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신이 신성시되던 시대에 그는 정신과 몸은 동시적이며, 오히려 몸이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성이 최고의 선으로 추앙받던 시대에 그는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단언했으며,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던 감정을 분류·정의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체계화했다. 신이 아닌 자연, 정신보다 몸, 이성보다 욕망과 감정을 앞세운 스피노자의 철학은 당대의 통념과 금기에 정면으로 맞서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철학사에서 스피노자만큼 혹독한 탄압을 받은 철학자도 드물다. 그는 신을 부정하고 유대교 교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고, 유대교 사회로부터 영구히 추방되었다. 그 과정에서 광신도의 습격을 받기도 했으며, 생계 수단을 잃어 렌즈 세공 기술을 배워야 했다. 그의 모든 저작은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고, 사후 출판된 『에티카』 역시 ‘악마의 책’으로 불리며 압수·소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역설적으로 스피노자의 사유가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를 증명한다. 그에게 가해진 종교적·사회적 탄압은 그의 사유가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 만큼 매우 강력하고 치밀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자유인은 죽음의 공포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 (『에티카』 제4부)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삶으로 증명하듯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날 암스테르담의 한 광장에는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동상은 그의 철학처럼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지 않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그는 습격으로 찢어졌던 망토를 걸치고 있고, 그 망토에는 작은 꽃들과 새들이 장식되어 있다. 어쩌면 스피노자는 그 작은 자연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의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스피노자의 ‘본성’이자 ‘자연스러운 삶’이었던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는 신의 손에 쥐어져 있던 자연을 다시 자연 속으로 돌려준 철학자다. 그의 철학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신도림 스피노자’는 누구인가?

- 스피노자를 사랑한 저잣거리의 철학자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 이 책의 저자 황진규는 『에티카』의 마지막 문장에 매료되어 처음 스피노자를 만났다. 그리고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철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는 삶을 시작했다. 그는 철학과 글쓰기를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신도림 스피노자’라는 별칭을 붙였다. 이 우스운 듯 진지한 별칭에는 스피노자를 향한 그의 깊은 애정과 고마움이 묻어 있다.


저자는 작가 생활 중 골방에서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에티카』를 펼쳤다고 말한다. 삶의 가장 어두웠던 순간에 스피노자의 사유를 등불 삼아 자신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에티카』를 책상 위에서가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서 읽어낸 사람처럼 보인다. 예컨대 19장 「희망을 가지면 삶이 나아질까요?」에서 그는 ‘언젠가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으로 불안한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때, 『에티카』에서 ‘희망’에 관한 정의를 발견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공포 없는 희망은 없고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 그는 ‘희망’과 ‘공포’는 맞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스피노자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희망 없이 글 쓰는 삶’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란 ‘희망 없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잘 나가던 후배를 ‘질투’했던 일, 아버지를 닮은 직장 동료에게 ‘반감’을 느꼈던 일, 회사를 다니지도 그만두지도 못해 ‘공황’에 시달렸던 일, 어린 시절 가난했던 ‘기억’ 때문에 돈에 집착했던 일 등, 온몸으로 겪어낸 삶의 진짜 이야기들을 통해 스피노자의 사유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철학은 저잣거리에 있어야 한다. 우리네 삶 가장 낮은 곳에 있기에, 크고 작은 삶의 애환과 고민이 녹아 있는 저잣거리.” (「머리말」 중) 저자는 우리의 삶의 고민에 스피노자의 철학을 섬세하게 엮어 넣는다. 그로 인해 『에티카』는 먼 시대의 난해한 고전이 아닌, 지금 우리의 일상과 호흡하는 살아 있는 지혜가 된다.


“스피노자에 대한 것은 잊지 않는다네.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이거든.” - 질 들뢰즈


저자는 이 책을 맺으며 스스로에게 붙였던 ‘신도림 스피노자’라는 이름을 내려놓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5년 뒤 펴낸 이 개정판에서 그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자신의 본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라”는 스피노자의 가르침은 이제 그에게 삶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사랑했던 이들만이 알게 되는 삶의 진실이 있다. 스피노자가 ‘신(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계의 진실에 가닿았듯, 그 역시 스피노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삶의 진실에 가닿게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 역시 각자만의 삶의 진실에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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