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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솔 Feb 07. 2022

싱글맘으로 살아가기


내 아이는 36주 2일에 태어났다.

갑작스럽게 하혈이 시작되어 병원진료를 받고 입원한 후 다음 날 진통을 7시간 조금 넘게하고 출산을 했다.

진통을 하는 내내 간호사들은 계속해서 보호자를 찾았다.


'남편 분은 언제 쯤 오세요?'

'보호자는 언제 오세요?'


간호사 한 명이 한 번씩 물었으니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을 4번쯤 들었던 것 같다.


'이혼을 해서 남편이 없어요. 친구가 오는 중이에요.'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담당의사선생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당황하고 계신 것이 느껴졌다.


내가 출산을 했던 병원은 모든 산모가 진통이 시작되면 가족분만실로 이동해서 프라이빗하게 출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전 날부터 조산기가있어 병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분만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서 다른 산모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반응을 보니 지금 이 병원에 진통을 하는 산모 중에 혼자 분만실에있는 산모는 나 하나고, 아마도 이런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출산이 다가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출산 시에 보호자가 있어야 하냐는 것이었다. 날짜를 잡아 제왕절개 수술을 받으면 간병인을 구할 수 도 있고, 날짜를 맞춰 와줄 수 있는 친구를 구할 수 도 있겠지만 입원기간이 긴 것이 걱정이되었다. 일주일이나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친구는 없었고 모르는 사람과 며칠씩이나 1인실에 있기에는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자연분만을 하자니 와 줄 보호자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네이버 검색창에 '혼자 분만' , '혼자 출산' 혹은 '미혼모 분만'같은 단어들을 검색했다. 대부분 둘째나 셋째를 출산하고 윗아이를 케어해줄 사람이 남편뿐이라는 내용의 글들만 나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아주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병원에서도 처음 겪는 일은 아닐테니 괜찮을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막상 간호사들의 질문을 마주하니 마음이 쓰라렸다.

상황을 설명 할 때 마다 비참함이 몰려왔다.

진통이 심해질 때마다, 몸이 떨려올때마다 슬펐다.

그래, 나는 몹시 슬펐다.


마침 근무가 없던 날이었던 친한 친구는 진통이 시작되고 4시간가까이 지나 병원으로 와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분만실에는 법적인 보호자만 출입할 수 있어 친구는 분만실 밖 대기실에 앉아 나의 출산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진통이 심해지기전 출혈량이 많았고, 며칠동안 거의 자지못하고 먹지 못한 탓에 통증이 심해지는데도 나는 점점 멍해졌다. 아픈데 졸린것 같기도했고 점점 의식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호흡이 잘 되지 않아 산소호흡기를 꽂았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간호사가 잠깐이나마 친구를 분만실로 들여보내주었다.


친구는 진이빠져있는 나를 보고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내가 밖에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잘 될거야.'


친구가 나가고 한시간 쯤 후, 아이를 낳았다.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간호사분들이 의사선생님과 함께 와 배를 눌러서 출산을 도와주셨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했고 잘 울었다.


병실로 돌아와 친구는 바닥에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웃기도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친구는 간호사가 정말 출생기록에 아이아버지의 이름과 인적사항을 정말 기록하지 않아도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는 말을 전해줬다.

친구는 간호사에게 산모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도 했다.


그때도 나는 조금 슬펐던 것 같다.


저녁시간이 되어 친구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돌아가야했는데, 내 상태를 체크하기위해서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는 호들갑을 떨며 내 친구를 향해 '안가시면 안되나요? 산모님 출혈량이 많으셔서  너무 위험해요!'라고 외쳤다. 곤란한 표정을 하는 친구를 향해 간호사는 생각보다 쓰러지는 산모가 많다는 둥, 링겔대를 들고 이동하는게 어렵다는 둥 여러가지 말을 하였다. 그렇다한들 친구가 남을 수 는 없었고 나는 그저 웅얼웅얼 간호사를 향해 조심하겠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도 나는 조금 슬펐다.


자꾸만 혼자라고, 나는 혼자 잘 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 너무 슬펐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혼자 아이를 보러 정해진 시간에 생아실로 갔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머리숱이 굉장한 내 아기.

철분수치가 낮아 의사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수유를 할 수 없어서 그저 유리창 안으로 아기를 들여다보는데 그 때에는 이제 슬프지 않았다.

 나는 이제 영원히 혼자가 아닐 것이므로.


'안녕, 내 아기. 어쩌면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이제까지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어. 반가워 내 유일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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