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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Sooha Oct 23. 2020

1. 방류

벌써 3월이 되었다. 2월이 끝나기 전에 글 한 편을 완성해보려 무작정 자판을 두드렸건만 끝맺지 못하고 달을 넘기고 말았다. 글을 써야겠다는, 글을 써서 소란스러운 것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의욕이 피어나고 한 달이 지났다. 기록의 충동에 드문드문 휩쓸려 10장이 넘게 써 내려갔으나 어딘가 부족한 글자만 나열할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하나의 말을 고르지 못했다. 속에 맴도는 무수한 말이 전부 진심이건만 어느 것 하나 지금의 심정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요리조리 끼워도 삐거덕거리고 덜컹거렸다. 모든 낱말을 모아 조각에 맞춰야 비로소 흐트러진 것들이 맞물려 굴러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글을 써 정리하려 애써보았지만 막상 자판 위로 손을 얹으면 한 글자도 쓰지 못해 괴로웠다.


마음의 결이 고르지 못하다. 수선스러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흩날린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 혼란스러운 동시에 너무 많은 생각이 눈 깜짝할 새 휙휙 바뀌는 바람에 생각의 형태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저편으로 사라지는 생각의 더미를 보며 그 수를 짐작할 따름이다. 하늘거리는 커튼 뒤에서 그림자를 보는 듯하다. 그림자를 추측하기도 잠시, 바람이 불어 흐트러진다. 아득해진다.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자면 나의 호수는 잔잔한 수면 아래 회오리가 친다. 안정된 듯 보이지만 간혹 수면 위에 퍼지는 잔물결이 고요를 흩트리고 마음과 생각을 흔든다. 고르지 못한 흐름에 몸을 맡겨 잠겼다 떠오른다. 다시 잠긴다. 무감한 나날. 괜찮다가 괜찮지 않다. 괜찮으면서 괜찮지 않다. 어중간한 기분이 위태롭게 순환한다. 혹여나 회오리에 휩쓸릴까 괜히 의식하지 않으려 시선을 돌린다. 물결이 잘게 넘실거리는 소리마저 멎으면 잔잔한 수면을 응시한다. 물 위로 부서지는 빛이 눈을 아프게 찌른다. 어찌하지 못하는 급류가 두려워 손을 담그지 못한다. 휘말렸다가 뭍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속에서 정신을 잃어버리면. 이 불안정에 끝이 있을까. 불안정한 기반 위에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두려움이 늘어지고 호수는 방치된다.


절망을 말해야 할지, 희망을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망설임이 꼬리를 물고 길어지면 한 글자조차 형상화하지 못하는 경험을 숱하게 해왔기에 무엇을 쓸지 모르면서 우선 쓰고 있다. 인생처럼 한 치 앞을 예측하지 못하는 글을 쓴다. 쓰다 보면, 마음을 자유로이 풀어놓으면 진심을 건져낼 수 있으리라 낙관적인 기대를 건다. 간혹 글을 쓰는 행위가 가닥을 잡지 못하는 인생을 손에 움켜쥐고자 하는 발악이 된다 할지라도.


나의 언어를 방류하면 어디로 흐를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 삶과 죽음. 미묘한 사이를 가로지르며 어디에 도달할까. 명암의 스펙트럼에서 시리도록 투명한 희망과 탁하게 스미는 절망을 담고서. 묵혀두었던 날것의 마음이 제대로 된 말을 입게 되면 어디로 날아갈까. 막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는 스스로의 끝을 가늠할 수 없기에. 자칫 음울하기만 했을 나란 응어리에 빛이 깃들 수 있을지 의구심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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