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하 Sooha Oct 23. 2020

2. 미루고 쓰는 이유

글을 써야 하는데 왜 매일 미룰까. 2월에 써둔 초고는 수정하고 3월에 쓰려고 뽑아놓은 소재들은 쓰면 되는데 왜 하기 싫은 걸까. 하기 싫다기 보다 두려운 것 같다. 잘 못 해낼 것 같으니까 싫은 척 귀찮은 척 무서워서 미루는가 보다. 그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스트레스가 쌓이니 중압감에 더 하지 못하는 연쇄작용. 나에게 새로운 짐을 지우는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다. 죄책감과 비슷한, 부채감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미루기의 천재들이라는 책이라도 읽어봐야 할까.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것도 미룰 게 빤하다. 이미 수십 권이 넘는 책이 오래도록 읽히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읽지 않는 나도 애가 탄다. 너희를 얼른 다 읽어야 내 마음도 편할 텐데 손이 안 간다.


내 밥벌이는 내가 하고 싶은데 당연히 오리무중이라 글이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적어도 글을 쓰면 뭔가 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있을 수 있으니까. 돈을 벌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뭔가 쓸모 있는 활동을 한 것 같은 뿌듯함과 성취감에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고, 혹시나 새로운 기회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공상 같은 기대에 숨을 수 있다.

달라지겠다고 마음먹는 것으로 세상이 달라지면 좋으련만.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떠도 나는 이 모습으로 늘 보던 방에 있다. 눈을 감아도 선명히 그려지는 탓에 달라지지 않은 걸까. 꿈에서라도 노력하고 달라지는 나를 체험하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는데 기도가 부족한지 혹은 뜬구름 잡는 염원이라 그런지 도통 이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학생 때가 편하다는 어른들의 심정이 이러했을 것 같다. 답 없는 인생. 답이 없어 막막하고, 답이 없으니 자유로운 인생.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지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편할 텐데 그랬다면 또 재미없었을 게 분명하다. 60억 넘는 인구가 60억 개의 모양과 빛깔로 반짝인다 했다. 60억 개가 넘는 삶이 다 다르다 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 지금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 수입이 없다 뿐이지 낡았지만 안락한 집에서 이토록 편안하게 산다. 속 편하게 매일 산책 갔다 와서 점심과 저녁을 요리해 먹고 가끔 집안일과 독서를 하는 단조로운 삶을 아마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다만 내가 불만족스러워할 따름이다. 다들 자신만의 삶을 궤도를 어떤 식으로 지어나갔을지 몹시 궁금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묻는다고 해서 답이 나오진 않겠지. 그건 그들이 간신히 찾은 답, 내겐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럼 나는 답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그걸 몰라서 일단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게 산책과 집안일과 독서와 친숙해지려는 노력과 문장을 엮어 글을 완성하는 행위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유지하고 머리를 빠릿빠릿하게 굴려 나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과정을 하루에 집약한 최선의 전략이다. 전략이란 단어가 거창하게 들려 웃기긴 하다. 하지만 나름 시행착오를 거쳐 수정하고 연습해서 겨우 익힌 현재 나의 삶의 유일한 발판이다. 암담한 안갯속을 뚫어버린 타개책을 찾기 전까지 뛰어도 거뜬한 몸과 넘어지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것 외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이 쉬운 일들이 남들에게 누구나 하는 누워서 떡 먹기에 불과해도,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습성이 기분을 후려쳐도.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쓰고 싶다. 그나마 손에 잡히는 것이 이것뿐이다. 당장은 이것 밖에 없다. 작가도 아니고 글을 써서 돈 한 푼 받지 않으며 왜 글에 집착하냐고 하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몰라서 집착한다. 모르니까 알고 싶어서, 알아내려면 답이 나올 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지 않나. 어쩌면 오늘 읽은 책의 저자처럼 나를 더 돌봐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나를 100%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글을 통해 뭔가 얻고 싶고, 그러려면 긴말 않고 써야 한다. 해봐야 답이 나올지 원래 답 따윈 없는 것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쓰려는 글은 쓰지 않고 다른 글만 척척 써낸 지 2주가 지났다. 그래도 다행이다. 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자판을 누를 땐 일필휘지가 가능하다. 일필휘지보단 그저 생각의 흐름을 따라 흘러 후루룩 써 내려간다. 아무튼 쓸 수 있으니 됐다. 뭔가 써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안심이 된다. 쓰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 내 안에 표현해야 하는 생각이 있다는 뜻일 테고 생각을 붙잡고 낑낑대며 올라가다 보면 윤곽이 잡히겠지. 뭐라도 발견하겠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도.

쓰자, 쓰자. 계속 쓰자.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싶은 거라도 적고 기록하자. 생각으로 형체를 입은 답이 없을 땐 행동만이 유일한 답이 되는 법이니까. 쓰고 쓰자.


공중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정성껏 고른 언어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야말로 나를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시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이야기를 쓰면서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던 그 순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만족감과 치유를 선물했다.

「책갈피의 기분」 김먼지





작가의 이전글 1. 방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