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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Sooha Oct 23. 2020

4. 독의 굴레

책을 출간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편집자님의 메시지가 고대하던 소식을 전해왔다. 곧장 서점 앱으로 들어가 제목을 검색하자 내 책이 등장했다. 드디어, 비로소. 기어이 해냈다는 실감이 끼치기도 전에 가족들에게 알리고 블로그와 SNS에 재빠르게 공개했다. 기온이 꽤나 내려갔던 날이라 근처 가게에 들어가 손을 녹이며 글을 작성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내 속속들이 축하 연락이 도착했고 한동안 서서 고마움을 답했다. 기뻐 마땅한 날이었다.

하지만 출간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을뿐더러 전혀 기쁘지 않았다. 기쁨 없이 감사를 뱉어내는 상황이 혼란스러웠고 감정은 빠르게 휘몰아쳤다. 그날부터 무엇에 짓눌리는지 알지 못한 채 잠이 들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전부 망가져 갔다. 이전과 다른 걸음을 딛기 위해 1년 6개월을 바쳐 책을 토해냈는데 정작 결과물을 완성하자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나로 회귀하고 말았다.

허전한 속을 달랠 길을 몰라 자포자기에 빠졌다. 마음에 막혀 또 멈춰 섰다. 행동하지 않음으로 나를 망가뜨리고 생활을 놓아버렸다. 잃었다는 표현도 무방하다. 다시 모든 걸 망친 채 회피하고 숨고 은둔했다. 백해무익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날을 지속했다.

낮이고 밤이고 커튼을 걷지 않아 날씨를 알지 못했다. 귀가한 가족들의 옷차림으로 그날 기온을 대강 짐작했다. 당연히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보지 못했고 항상 챙겨 보던 달조차 보지 않았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 시간에 일어나 기울 무렵에 몸을 일으켜 씻고 누웠다. 간혹 외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무시하고 이불을 더욱 꽁꽁 싸맸다.

이제껏 경험한 공허와 다른 허전함에 시달렸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고 해결하려는 의욕은 티끌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 사회적으로 고립되었고 무기력증에 패배하여 시체처럼 몸을 늘어뜨렸다. 24시간의 절반은 불규칙한 잠에 덮였고 눈을 뜬 시간은 오로지 휴대폰의 작은 화면 속을 배회했다. 마음을 어찌할 바 몰라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때때로 씻고 밥을 먹었으나 그 순간조차 작은 기계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빛이 나는 화면이 호흡기가 되어주었다. 세상의 잡다한 가십과 타인의 일상과 창작물 틈에 섞여들면 숨 쉬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달아날 수 있었다. 버튼 하나로 꺼진 화면 위에 드리운 멍청하고 가망 없는 얼굴을 지우고 고통으로 전락한 감정에서 도망치고 나라는 몹쓸 사람마저 사라지게 했다. 치명적인 독인 걸 알면서 중독되길 자처했다. 독에 취하여 가장 어리석은 방식으로 자신을 망치고 망가뜨렸다. 그게 내게 선택한 하루이자 삶이자 바로 나였다. 이대로 침몰하여 영원히 잊히길 바라며 실재하지 않는 쥐구멍으로 파고들었다.

급작스러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긴 시간 달려온 목표를 이루자 더는 앞으로 향할 길이 없었다.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내게 주어졌던 유일한 끈이 끊기자 내 인생마저 잘려버린 허무에 점령당했다.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하냐는 질문에 답할 말이 없었다. 상실을 견딜 수 없었고 견디고 싶지 않았다. 책 한 권 낸 것으론 인생의 한 장면도 바꿀 수 없었다. 내 책장에 직접 쓴 책이 꽂혔을 뿐.

한때나마 걸었던 희망은 빛을 잃고 바스러졌고 무력하게 주저앉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희망은 보이지 않아도 곁에 함께 한다지만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빛과 어둠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흐르지만 깜깜한 순간이 도래하면 희망은 과거가 된다. 빛은 쉽게 퇴색되고 어둠은 현재로 진행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듬성듬성하게 난 빛줄기를 제외하면 어둠의 선상을 더듬으며 걸어왔다.

저녁에 바깥을 잠시 걸었다. 오랜만에 달을 보았다. 환하다. 안경을 끼지 않아 여러 겹으로 번지는 달을 잠시 응시했다. 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달도 존재하지 않겠지. 궁금증은 아무렇게나 생겨났지만 질문의 저의를 파악하지 못했고 답하지 못했다. 무슨 질문이 하고 싶었던 걸까. 무슨 답이 듣고 싶었던가.

매일 빛이 선명한 시간에 공원을 산책하자, 하루에 10페이지 정도 책을 읽자, 밥을 잘 챙겨 먹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는 생각은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못하는 건지 하지 않는 건지 모른다. 그냥 하고 싶지 않으니 하지 않은 거라 판단한다. 절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를 욕하고 똑같이 살 게 분명하다며 체념하고 다가올 시간은 비관 속에 치달을 것이란 악담을 퍼붓는다.

손에 열쇠를 쥐고선 문을 열지 않는다. 진실로 힘이 없지만 무기력은 감정에서 파생한 부산물에 불과하다. 잉크가 나오지 않는 볼펜을 쥔 듯 불안하다. 곧 치를 시험이나 깨닫지 못한 채 벌써 시작한 시험지에 뭘 써야 할지 몰라 두렵지만 기능을 잃는 볼펜으로 핑계를 댈 수 있지 않을까 허황된 기대를 품는다. 수중에 하나밖에 없는 볼펜은 한때의 달콤한 합리화를 제공하지만 시도조차 못 하고 시험을 실패로 이끈다. 자신의 능력으로 실패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스스로의 손가락질을 피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실패하는 데 익숙해졌다. 내 하루가 그러하다. 이 하루의 실패가 그러하다. 하지 않아서 실패한다. 무언가 행동했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한 부류의 실패에서 옛적에 멀어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행동한 이에게만 해당한다. 행위 없는 실패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는다. 유일한 타개책은 뭐라도 일단 행동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알면서 하지 않는다. 무기력의 독에 마비되었다. 안타깝게도 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미련을 끊지 못하면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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