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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Sooha Dec 25. 2020

5. 언젠가의 약속

머리통 안에 잡동사니가 한가득 들어차서 두통이 인다. 만날 신경을 긁고 개운치가 않다. 기약 없는 현재처럼 갑갑하다. 덮이고 막히고 가린 것 투성이를 가림막으로 둘러놓았다. 다리를 옮기는 자리마다 형체를 알지 못하는 애물단지에 부딪히고 때로 걸려 넘어진다. 사방으로 어쩌지 못하는 답답함이 펼쳐진다. 잘 쳐줘야 골동품인 옛날의 나 위로 먼지가 뿌옇게 앉는다. 넝마처럼 해어진 단편이 지난날의 잔상처럼 깔려 폐허를 방불케 한다. 한때 진귀했을지라도 시간의 흐름을 피해 가지 못하고 쓰임새를 다한 순간 한낱 짐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구닥다리나 고물로 팔아버리기도 뭐한, 잡것으로 전락한다.


글을 써도 답답하기만 하다.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같다. 겉만 핥고 있다. 닿으래야 닿지 못하고 제자리를 뱅뱅 도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언제쯤 쇄신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잔바람에도 흔들린다. 단단해질 날이 온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이 오기나 하련지. 이토록 나를 모르는 채로 갸우뚱거려야 하는지. 오뚝이 마냥 일어날 수나 있으면 조금쯤 편해질 것 같은데 그날은 도통 요원하다. 쓰는 행위가 무상할 따름이다. 그만 접어야 한다는 외침이 들린다. 글자의 형태로 붙잡으려 하면 잃게 될 뿐이라고 본능이 전언한다. 쓰고자 발악하는 몸짓과 기어코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각오와 그 대상까지 놓아버려야 한다며 속삭인다. 그만두라고, 포기하라고. 그럼 편해질 거라는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유혹한다. 하지만 이성은 그 말에 동의하면서 미련하게 같은 짓을 놀리고 만다.


여행이란 말로 차마 포장할 수 없는 방황의 길이 늘어진다. 언젠가라는 단어가 가혹하다 피시 희미하다. 그럼에도 감히 언젠가를 빌려 방랑 끝에 단단히 자리 잡는 미래가 온다면 그때야말로 견고하게 서기를 소원한다. 그림자 같은 과거를 과감히 버리고 공들이지 않아도 후련하기를, 또한 기틀을 견고히 다져 현재를 전진하길 기도한다. 그 언젠가가 오늘이 되어 바라지 않아도 되는 날을 반드시 만난다면 나를 얼싸안고 고생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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