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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Sooha Dec 25. 2020

7. 두렵지 않은 터널

몇 해 전부터 청취하고 유튜브를 개설한 뒤로 꼬박꼬박 영상까지 찾아보았던 뇌부자들 구독을 취소했다. 최근 들어 정신질환과 관련된 이슈가, 용어가,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기분과 비슷하다. 분명 갔던 곳인데 내가 정말 갔었던가 의심이 든다. 새 학기의 첫 등교 날처럼 익숙하면서 낯설다. 그때와 조금 달라진 건 이제 나는 졸업해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 우울증으로. 과거가 되어 회상할 뿐이다. 혹여 돌아가더라도 예전의 그 장소와 자리는 아닐 것이다.

전처럼 우울한 감정을 고백하거나 마음의 아픔을 딛고 성취해낸 사람을 보아도 질투가 나거나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나의 목표는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으로 바뀌었기에 과거의 비틀린 욕망이 얽어매지 못한다. 간혹 입을 삐죽거리거나 조금 샘이 날 때도 있지만. 살짝 발이 걸리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건 그들의 우울증이라서 또는 우울증이면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재능과 해낸 결과물의 우수성이 부러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가진 마음의 아픔과 이는 별개로 전혀 무관하다. 그렇다면 내 우울을 빼앗긴 것처럼 괴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의 감정은 고유한 것으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각자의 감정에 담긴 역사가 다른데 어찌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아직 그곳에 있거나, 나오는 중이거나, 옛적에 벗어나거나, 동행하며 살아가는 등 다양한 군상 중에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감정과 마음에서 병이라 규정된 팻말을 떼어내고 우울증이란 이름표가 없이 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냥 이름 석 자를 가진 나로서, 내 인생을 정신질환과 무관하게, 이제껏 앓아왔던 정신적인 문제와 분리되어 잘 살아가기로 선택했다. 새로운 학교에 진학하듯,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우울이 찾아오거나 마음이 엉키더라도, 속에 감추어둔 진심과 그동안 생겨난 마음을 경청하겠지. 상담 선생님처럼 언제나 내가 지친 나를 기다리며 환영하며 반갑게 맞아줘야지. 솔직히 병으로선 다신 만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지만 긴 시간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잘 견뎌왔으니까. 게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긴긴 터널을 빠져나왔으니까. 다시 터널에 들어간다 해도 마냥 두려워 떨진 않을 것 같다. 들어가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듯 내 인생 또한 그러하니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잘 대비하는 수밖에.

우울이 깊은 바다 같고,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같을지라도 실은 통과할 수 있는 터널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상상의 괴물이 온갖 두려운 생각을 사실로 만들어버리지만, 이는 공포가 자신의 영역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속셈일 뿐이다.

또 터널에 들어가더라도 빛을 밝힐 랜턴이 있고 구조 신호를 보낼 방법을 알고 밧줄로 출구로 인도하는 조력자가 있다. 설령 두 손에 아무것도 없고 아무거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굳어있더라도 두 손을 더듬어 벽을 찾아 한 발짝씩 뗄 수 있다. 지난 13년, 아니 내 평생의 시간이 날 빛이 가득한 출구로, 사람들에게로, 나의 푸르른 들판으로 안내하리라 믿는다. 어제와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나를 어둠에서, 우울에서 이끌어내는 견인차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공포는 나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공포와 두려움 무서움 따위를 끌어 안아줄 것이다.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나를 뒤덮지 못 하도록.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지 않도록 한껏 부둥켜안아 주어야 한다. 그럼 다른 감정처럼 작은 조각이 된 그것들의 귀여운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공포는 외면할수록 기세가 등등해지고 당당히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해야만 잠잠해진다. 두려움은 나에게 속한 것이니 절대 사라지지야 않겠지만 통제를 잃고 지배당할지 내가 품어 그 속에서 벗어날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원래 모습을 되찾은 감정들을 갈무리해 마음의 방에 있는 각자의 자리로 돌려놓고, 감정들의 힘을 입어 수렁과 바다의 환상에서 빠져나가면 된다. 눈을 가린 공포를 걷어내면 길이 보인다.

이 과정을 지난하게 반복했던 날들이, 힘겨움을 버티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내가, 결국 날 구할 거라고 확신한다. 겨울은 반드시 봄을 데려오고, 밤이 오면 언젠가 동이 트고 아침이 된다. 걸어온 시간은 전부 자연의 섭리를 따라 순환했으니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감정과 인생의 파도를 넘나들겠지. 그래도 순환의 진리를 알게 되었으니 두려울지언정 걱정스럽지 않다.

난 이제 내 감정의 하나일 뿐인 우울이 무섭지 않다. 방을 비집고 나와 불만을 토로하면 늘 그래왔듯 경청하고 보살피면 된다. 나는 방법을 알고, 충분히 행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당분간 뇌부자들도, 나를 지탱했던 타인의 진솔한 경험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안녕, 잘 있어. 또 필요해지면 올게. 그때 또 나를 위로하고 도와줘.' 그래도 우울을 사랑하고, 고통스러웠던 그 날을 애증이나마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던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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