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드 프로젝트 일대기
얼떨결에 맡게 된 PM이라는 감투.
내가 신청했기에 변명이나 투덜댈 거리도 없었다.
이왕 시작하는 거 한번 해보자
회사를 다니는 이상 앞으로 오래 하게 될 PM이니, 미리 연습하자고 생각하며 팀원들과 슬랙 방에서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 글을 쓰고, 회의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진행하게 된 첫 회의의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안녕하세요, 우리 팀의 PM을 맡은 OOO입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날은 2월의 한 겨울이었다.
집에 난방을 해놨어도 추운 계절인데, 회의 끝나고 나서 본 내 얼굴은 발그레하다 못해 시뻘게져 있었다. 온라인에서 봤기로서니 망정이지, 오프라인에서 봤다면 누군가 선풍기라도 틀어줬을 거다.
프로젝트가 꽤 진행된 후로도 나는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내가 가지고 있던 PM 역할의 무게가 딱 그랬던 것 같다. 들고 있으면 왠지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무게.
팀 매칭은 됐지만 아이템 선정부터 팀원들과 같이 논의해야 했다. 팀원들도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아젠다를 내가 세팅해야 했고, 회의를 시작하면 팀원들은 해바라기처럼 나만 바라보았다.
회사에서는 이미 특정한 아젠다가 수립된 회의만 진행해 보았던 터라, 나는 일정에 따라 직접 0 to 1으로 아젠다를 세팅하는 경험이 부족한 상태였다. 초반이었기에 팀원 개개인의 성향도 잘 몰랐을뿐더러, 부끄럽지만 회의를 진행할 때 준비 없이 무작정 회의에 들어갔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초보 PM이 진행하는 회의는 팀원을 지치게 했다.
회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 팀원들의 진이 빠지는 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씩 멘붕이 왔다.
모두를 위해 더 이상 이런 피곤한 회의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 빨리는 회의를 몇 번 하고 나니 나름의 특징이 보였고, 이런 현상을 마주치지 않도록 나름의 예방조치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난 이 특징을 정리해서 회의 진행 중간마다 이런 전조현상이 포착되면 바로 잡자 다짐했다.
내가 포착한 기 빨리는 회의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모든 회의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어야 하고, 회의에서 하나의 아젠다를 논의했다면, 그 아젠다에 대한 명확한 액션이 도출되어야 한다. 꼭 특정 다음 액션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특정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가 아젠다에 대한 명확한 결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 빨리는 회의의 PM은 이야기의 결말을 짓지 않는다. 그래서 그걸 듣고 있자면, "그래서 우리 어떻게 뭐 하자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이 뭐예요?
회의란 끝이 없다. '끝'은 논의 과정 중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PM이 이야기의 결말을 '정리' 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우리 스스로 '정의' 내리는 것이다.
회의는 딴 길로 새기 일쑤다. 왜냐면 회의도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고, 대화는 생각과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우리는 항상 하나의 생각에 수많은 곁다리 생각을 동시에 하지 않나. 딴 길로 새는 걸 일체 막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잘못됨을 인식했을 때 바로 잡는 것이다. 내가 갈 길이 아닌 다른 길이라면 원래의 방향으로 바로 잡아야 하는데, 기빠지는 회의의 PM은 이런 의식의 흐름을 그냥 냅둔다. 결국 정리할 수 있는 문제도 정리하기 어렵다.
이건 지금 얘기 마무리하고, 조금 이따 이야기하죠!
다른 길로 샌 이야기가 재밌다고 계속 함께 얘기하면 의식의 흐름에 스스로 말리는 꼴이 된다. PM은 회의 진행의 기세를 몰아야 하는 사람이지, 이야기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회의가 정신노동의 끝장판이라고 생각한다. 회의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내 주장의 근거를 생각하고 조리 있게 설명해야 하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한다. 이건 개인이 혼자 방문 닫고 몰입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과 비교할 때, 훠~얼씬 더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노동 후에는 쿨타임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 회의는 결말을 스스로 지어야 하고, 이야기가 딴 길로 새기 일쑤며, 이를 막을 수 없기에 결국 가끔씩은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조금이라도 얘기가 길어진다는 걸 감지했다면?
우리 5분만 쉴까요?
한마디 던져보자. 가끔 5분 쉬어도 결론이 안 날 것 같다면 그냥 서로 생각 정리 좀 해보고 다음 회의 때 논의하자고 말하는 것도 나는 좋았다.
급할 건 없다. 이건 사이드 프로젝트지 회사가 아니지 않나. 어차피 우리끼리 만드는 일정 아닌가? 초반부터 쿨타임 없이 달리는 회의는 모두에게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두 볼의 발그레함과 땀의 양도 조금씩 줄일 수 있었던 배경은 회의를 점점 진행하며 이런 기빠지는 회의를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에 있었다.
1. 회의의 목적과 논의할 아젠다를 미리 준비한다.
2. 하나의 아젠다를 이야기하면서 중간중간마다 결론을 내린다.
3. 다른 길로 샐 때면 원래의 방향을 팀원들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4. 회의가 길어진다 싶으면 쿨타임을 가진다.
+ (플러스) 다음 회의의 이야깃거리를 위해 액션 아이템을 정리한다.
내 부담감의 가장 큰 원인은 '긴장'이었다.
'긴장'은 스스로 뭔가 '모르는 구석'이 있어 두려울 때 느끼는 감정이다. 회의란 정신노동의 끝장판이라는 걸 인식하고, 회의 중간마다 팀원들이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관리해보자. 회의의 기세를 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긴장하고 있는 초보 PM, 당신의 명쾌한 회의 진행을 응원한다!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 일대기.